아들에게
아들에게
나는 오늘. 3년 전 너를 데리고 오는 것처럼 경희를 데리고 점촌고등학교를 나왔다. 일주일 만에 만나 기뻤다. 남자인 너와 여러 면에서 다른 경희는 볼 때마다 더 안스럽고, 가슴이 더 찡해왔다. 그런데 경희는 나를 보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영어시험을 보고 나오는 길인데, 30점 밖에 맞지 못했다고 하면서 닭구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나도 눈물도 나고, 마땅히 해 줄 위로의 말도 없어 "괜찮아. 괜찮아."만 되풀이했다.
영어시험문제가 도대체 어떤데 그런가? 한 번 보자며 아빠 사무실로 왔다. 그런데 아뿔싸! 나는 더 모르겠더라.... 막막한 상황이 나를 무척 힘들게 했고, 경희는 계속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지. 거기에다가 경희는 내신 걱정, 농어촌전형이 없어지는 걱정. 오빠는 운도 좋았다는 푸념. 공부는 많이 하는데 도대체 성과도 없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불안.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내일 시험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 대한 열등감.... 정말 기막히더구나. 급기야 나는 경희에게 가은고등학교나 상지여자종합고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농어촌전형에 도전해 보자고 권유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막상 점고는 떠나기 싫고....
한참을 막막히 둘이서 마주 보고 있는데, 불현듯 네가 떠올랐던 것이다. 오! 주여! 감사합니다. 우리의 희망~~ 고걸이여!!!
네 편지 잘 받았다. 너의 점촌고등학교 3년이 이렇게 정교하게 진행된 모습은 나에게도 감동을 주는구나. 경희에게는 물론, 제 점고 3년의 나침반이 되겠지.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네 동생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 준 네가 정말 고맙고 자랑스럽다. 너희 3남매가 오늘처럼 이렇게 서로 밀어주고 당겨준다면 이 세상은 훨씬 아름답게 수놓아질 것이다. 바쁘고 힘들겠지만 종종 동생들에게 나침반을 놔 주어라. 경희에게 보내는 메세지가 유진이에게도 자연스럽게 전달 될 테니 너의 배려가 많은 것을 낳을 것 같구나.
너의 살가운 편지로 말미암아 우리 가정에 오늘. 평화와 안정이 깃들었단다. 잘 자라~~~
(네 엄마와 할머니, 동생들이 깊게 잠든 밤.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