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기도
중년의 기도
수필가 고성환
아직 가슴에 남아 있는 청년의 맥박을
진정하게 해 주시고
남의 말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
천칭의 눈을 주소서.
아직 마음에 남아 있는 청년의 정력을
적절히 배분하게 해 주시고
남의 것에 쉽게 동하지 않는
절제의 걸음을 주소서.
나의 기백과 지혜로 이룩한 일이 있더라도
그것이 나의 힘으로 이룩된 것이 아니라,
단지 운이 좋아서 된 것이라고
두 손 모아 감사할 줄 알게 해 주소서.
혹시, 무슨 일을 하다가 잘못되었더라도
이를 만회하기 위해
남은 내 정열을 올인하게 하지 마시고
잘못된 것을 하나하나 새롭게 고쳐가는
우직하면서도 낮은 내가 되게 하여 주소서.
패기와 열정을
김장처럼 농익게 하시고
정의와 신의를 위해
한 걸음 물러날 수 있게 해 주소서.
물처럼 낮은 데로 나의 길을 인도하시며
높은 이상에 허영의 깃발을 매지 말게 하시고
내 이름을 높이고자
남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게 하소서.
흐르는 구름처럼 내 마음을 흘러가게 하시고
자연과 인간의 본디 그러함을 깨닫도록
자신의 연마를 게을리 하지 않게 하시고
세상을 두루 볼 수 있는 여행을 하게 하소서.
지금의 처한 상황에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최선을 다하게 해 주시고
얼굴에는 늘 미소를 머금게 해 주소서.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맞아서도
서둘지 않게 해 주시고
복잡하고 꼬여있을수록
유모어를 발휘 할 수 있는
용기와 여유를 주소서.
부모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릴 수 있게 해 주시고
아이들에게 사랑의 기도를 올릴 수 있게 해 주시며
아내에게 포옹의 기도를 올릴 수 있게 해 주소서.
지금까지 산 날보다
남은 생이 더 짧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고
나와 이웃을 다 같이 생각할 수 있는
배려와 양보와 겸손을 주소서.
(2008. 06.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