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중년의 기도

문경사투리 2008. 6. 8. 20:44
 

중년의 기도

 

 수필가   고성환


아직 가슴에 남아 있는 청년의 맥박을

진정하게 해 주시고

남의 말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

천칭의 눈을 주소서.


아직 마음에 남아 있는 청년의 정력을

적절히 배분하게 해 주시고

남의 것에 쉽게 동하지 않는

절제의 걸음을 주소서.


나의 기백과 지혜로 이룩한 일이 있더라도

그것이 나의 힘으로 이룩된 것이 아니라,

단지 운이 좋아서 된 것이라고

두 손 모아 감사할 줄 알게 해 주소서.


혹시, 무슨 일을 하다가 잘못되었더라도

이를 만회하기 위해

남은 내 정열을 올인하게 하지 마시고

잘못된 것을 하나하나 새롭게 고쳐가는

우직하면서도 낮은 내가 되게 하여 주소서.


패기와 열정을

김장처럼 농익게 하시고

정의와 신의를 위해

한 걸음 물러날 수 있게 해 주소서.


물처럼 낮은 데로 나의 길을 인도하시며

높은 이상에 허영의 깃발을 매지 말게 하시고

내 이름을 높이고자

남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게 하소서.


흐르는 구름처럼 내 마음을 흘러가게 하시고

자연과 인간의 본디 그러함을 깨닫도록

자신의 연마를 게을리 하지 않게 하시고

세상을 두루 볼 수 있는 여행을 하게 하소서.


지금의 처한 상황에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최선을 다하게 해 주시고

얼굴에는 늘 미소를 머금게 해 주소서.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맞아서도

서둘지 않게 해 주시고

복잡하고 꼬여있을수록

유모어를 발휘 할 수 있는

용기와 여유를 주소서.


부모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릴 수 있게 해 주시고

아이들에게 사랑의 기도를 올릴 수 있게 해 주시며

아내에게 포옹의 기도를 올릴 수 있게 해 주소서.


지금까지 산 날보다

남은 생이 더 짧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고

나와 이웃을 다 같이 생각할 수 있는

배려와 양보와 겸손을 주소서.


(2008. 06.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