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봉 김성일 선생, 의성김씨 청계공파(靑溪公派) 문중 특별전
학봉 김성일 선생
의성김씨 청계공파(靑溪公派) 문중 특별전
‘仁을 머리에 이고 義를 가슴에 품다’
임진왜란 당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학봉 김성일 선생의 문중인 ‘의성김씨 청계공파’ 기탁품 특별전시회가 2008년 11월 27일부터 2009년 2월 2일까지 경상북도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열리고 있다.
문경문화원 향토사연구소 김학모 소장을 비롯한 8명이 개관식에 참석하고, 조선시대 의성김씨 가문의 영광을 확인하였다.
청계선생은 5남 3녀를 두었으며, 5남 중 3명이 대과에, 2남이 소과에 급제하는 등 자녀 교육에 성공하였으며, 이를 통해 오늘날까지 꼿꼿한 선비집안의 유풍을 이어오게 하였다.
청계선생의 본명은 김진(金璡/1500~1580)으로서 부친 예범(禮範)씨와 모친 영해신씨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슬하에 약봉(藥峰) 극일(克一/1522~1585), 귀봉(龜峰) 수일(守一/1528~1583), 운암(雲巖) 명일(明一/1534~1570), 학봉(鶴峰) 성일(誠
一/1538~1593), 남악(南嶽) 복일(復一/1541~1591)을 두었다. 극일,성일,복일이 대과에 수일,명일은 소과에 합격하여 이 아들 다섯을 천전오룡(川前五龍), 김씨오룡(金氏五龍)이라 하였으며, 내앞 대종택을 오자등과댁(五子登科宅)으로 불렀다.
안동일대에는 천김쟁쟁(川金錚錚)이라는 말이 전하는데, 쟁쟁(錚錚)은 금옥(金玉)소리의 형용으로, 재화(才華)의 출중함을 비유한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대쪽 같은 꼿꼿함으로 좀처럼 꺾이지 않는 내앞 의성김문들의 성품을 일컫는다는 입장도 있다.
의성김씨 가문이 지금까지도 선비 집안으로 추앙받고 있는 것은 학봉 선생의 임진왜란 의병에서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나라가 어지럽고,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사리사욕을 버리고 공리와 나라를 위해 분연히 일어설 수 있었던 용기와 결단이 면면히 이어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