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삼국지연의’ 산책
소설 ‘삼국지연의’ 산책
시인 김시종
고전(古典)이란, 오래된 책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인류에게 참된 감동이나 교훈을 주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일급서적을 말한다. 조선말의 우리나라, 청나라 말의 중국은 근대화의 모델로 동도서기(東道西器)를 기본정신으로 해 동양의 심원한 사상에, 서양의 기술을 접목시키려 했지만, 아시아에서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중국이 자기 나라 문화에 자부심을 느낀 것은 훌륭한 고전을 많이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동양의 고전이라면, 중국의 고전이란 말과 거의 같다고 본다. 아무래도 동양의 고전이라면 한․중․일 국민이 다 같이 중국의 ‘삼국지연의’에 첫손가락을 내어 주리라.
필자는 뱃속에서 아버지를 여의고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그나마 다행한 것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소설 ‘삼국지’인 ‘삼국지연의’를 접하게 된 것이다. 당시 6․25전쟁 직후 중․고등학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학생잡지 ‘학원’은 청소년들에게 우상이었고 큰 위안이 되어 주었다. ‘학원’이 나오기 전에, 중학생인 필자도 서점에 선금을 지불하고, ‘학원’이 발행되기 며칠 전부터 밤잠을 설쳤다. 당시 내겐 월간잡지 ‘학원’을 제때 읽는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었다.
‘학원’에서 만화로 된 ‘코주부 삼국지’도 재미있었지만, 소설 ‘삼국지’를 직접 읽게 되니, 중1 여름방학이 짧기만 했다. 제1권 ‘도원의 결의-형제’편부터 마지막 권인 ‘천하통일’까지 독파하는데 중학교 첫 여름방학을 헌납했다.
중1 시절에, 우리 학급 내 자리 가까이에 억센 H라는 급우가 포진했는데, 키가 도토리만 한 옆 좌석의 세 친구가 ‘삼국지’ 1권의 ‘결의 3형제’를 모방해, H와 맞서기로 한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다.
‘삼국지’는 본래 소설이 아닌 중국 위․촉․오의 정사(正史)다. 진나라 때, 진수가 지었는데, 원나라 때 문인인 나관중이 소설로 각색한 것이다. 원나라 때는 ‘삼국지연의’와 4촌쯤 되는 ‘수호지’도 태어났다.
원나라시대는 본토 한인에겐 불우한 암흑기였다. 원나라는 익히 아는 대로 인종차별주의에 입각해서 대국토를 통치했다. 국민을 4계급으로 나눠 차별했는데, 최상위층엔 국족(몽고인)을, 둘째 등급엔 색목인(서역)을, 3위 그룹엔 한인(중국인)을, 맨 끄트머리 4등급엔 남송인을 배치하여 인종을 구별하였고, 1등급 국족은 고관직을, 2등급인 색목인은 재정․기술관직을, 3등급인 한인은 말단 관직을 겨우 맡거나 말거나 경시했고, 4등급인 남송인은 몽고에 끝까지 저항했다 하여 최하층으로 분류해 하대했다.
원의 치하에선 한인은 관리로서 입신은 불가했다. 그래서 한인은 관리로서 꿈을 접은 대신 자기들의 재능을 소설을 짓는데 바쳐, 스케일도 크고 온갖 재미를 다 갖춘 소설의 금자탑을 쌓게 된 것이다. 한인들이 원대에 우대를 받아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더라면, 인류에게 진한 감동을 주는 ‘삼국지연의’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으리라. 소설은 재미난 줄거리를 지닌 이야기보다 인물의 독특한 성격을 창조해야 하는데,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등장인물들의 성격들은 한 사람도 중복됨이 없이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소설 ‘삼국지’는 성경 다음가는 고전이다. 딴 사람에게도 그렇겠지만 내게는 더욱 그렇다.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는 명장면을 간단히 적어보면 이렇다.
1. 사선(死線)을 말 한 필에 같이 타고 넘은 선남선녀, 청년 유비와 홍부용 아가씨가 백년가약을 맺지 못하고, 히마리 없이 헤어진 것.
2. 갖은 고생과 패전 끝에 유비에게 구세주같이 나타난 군사고문 단복(서원직)을 순욱에게 속아 조조에게로 보내준 유비의 순후한 인간애.
3. 제갈 양을 앞지르는 책사 방통의 요절로 인재난인 유비에게 더욱 큰 아쉬움을 남긴 것.
4. 의리의 화신 관우의 허무한 최후-오나라 장수 육손에게 생포되어 참수를 당함.
5. 제갈 양의 ‘출사표’와 진중사망.
이렇듯 희극보다 비극이 가슴에 더 큰 감동을 준다. 소설의 마무리는 아쉬움과 한을 주어야 인상적이요 성공적이다.
‘삼국지연의’의 스포트라이트는 역시 제갈공명이다. 제갈공명은 실제 능력보다 과장된 점이 매우 크다고 한다. 소설은 현실보다 허구의 미학이다.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이 제갈 양과 상통하는 점이 상당히 많다. 두 사람 다 전장에서 순국했고, 향년도 같은 54세요, 시호도 둘 다 충무공이요, 운명하기 전에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진 것도 같다. 하지만 가장 큰 공통점은 두 분 다 만고충신이라는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