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글짓기-산딸기
산딸기
점촌고등학교 2학년 4반 고경희
진달래와 산벚꽃, 복숭아꽃, 살구꽃이 피었다지면, 이내 도랑가에 철쭉이 피었다지고, 그런가 싶으면 어느새 꽃 진 자리에 잎들이 새록새록 파릇파릇 합니다. 그런 다음 피는 찔레꽃은 잎과 줄기가 반반 사이좋게 들어난 상태에서 함초롬히 피어납니다. 그리고는 핀지도 모르게 딸기꽃이 피었다지고, 진혼곡이 울리는 현충일 전후에 산딸기가 밭둑 가득 피어납니다. 봄이면 내가 태어나고, 뛰어 놀던 마을은 이런 꽃들로 한바탕 잔치가 벌어집니다. 3월과 4월이, 그리고 5월과 6월이 이렇게 꽃과 신록과 산딸기로 한 계절의 청춘을 달려갑니다.
그러면 우리 할머니는 길디 긴, 바쁘디 바쁜 농사일의 초입에 들어섭니다. 종달새 지저귀는 밭가에 우리 3남매를 앉혀놓고, 하루 종일 일을 했습니다. 우리 3남매가 칭얼거리면, 찔레도 꺾어 주시고, 산딸기도 따주시고, 밭곡식과 사람곡식을 함께 가꾸어 오셨습니다.
유년의 그때는 몰랐습니다. 자연의 찬란한 잔치 속에서 할머니의 그 고단한 삶이 얼마인지 짐작도 못했습니다. 커다란 칡잎에 산딸기를 한웅큼씩 따주던 할머니의 그 손마디가 이리도 굵고 아픈 상처의 마디들로 이루어져 있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최근 정신이 흐려지시더니 우리가 알 수 없는 말씀들을 할머니는 자주 하십니다. 아빠의 말씀으로는 치매라고 합니다. 이제 할머니의 정신 연령은 5세 이하의 어린이와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잠을 주무시다 일어나시면 한참을 그런 상태에 놓이는 것 뿐 입니다.
그런 할머니의 말씀은 몇 가지가 전부입니다. 우리 집에서 할머니의 말씀을 알아듣는 사람은 아버지 밖에 없습니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말씀들을 우리에게 해설을 해 주십니다. 그 중에서 할머니 친정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뜬금없다고 생각한 할머니의 그 밑도 끝도 없는 말씀이 가슴 아픈 전쟁의 후유증이란 걸 알았습니다.
할머니는 1남 3녀의 4남매가 있었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맏이, 둘째가 남동생, 셋째, 넷째가 여동생입니다. 우리도 두 이모할머니는 알고 있지만, 진외가의 할아버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할머니는 그 진외가의 할아버지에 대해서 늘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 때, 도망가라고 물 떠 와라, 하고 밖으로 내보내면, 시키는 대로 물을 떠 오고, 물을 떠 오고... 아이~ 그때 그 길로 도망쳐 나왔으면 됐는데... 너희들 할아버지가 부탁을 해서 진외가 할아버지가 도망칠 수 있게 그렇게 눈치를 주었다는데도 쑥맥 같은 진외가 할아버지는 끝내 눈치를 못 채고, 전쟁터에 가서 그만....’
진외가 할아버지는 산딸기가 한창 달리던 6.25 전쟁 발발 그 이듬해 초여름에 그렇게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분의 고모는 바로 그 할아버지의 딸인데, 그 고모가 뱃속에 들었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고모는 유복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도 그 고모가 우리 친고모인 줄 알았었는데, 이렇게 아픔이 많은 이 땅의 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진외가 할머니도 다른 곳으로 개가를 하시게 되고, 때문에 그 고모는 호적도 제대로 얹히지 못하고, 고모의 큰집 자식으로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고모는 국가보훈대상자로 혜택을 보지 못하고, 힘들게 60여년을 살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얼마 전에 그런 고모가 호적을 정정하기 위해 변호사에게 상담을 해 보았지만, 소송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면서 세상을 향해 욕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 실감 할 수 없는 전쟁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이렇게 사람의 삶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반인륜적이며, 인정도 사정도 없는 몰상식한 행위였음이 실감납니다.
우리의 전쟁은 바로 남북분단이 그 원인입니다. 같은 민족이라고 말은 하면서 남북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어야 하는 이 현실을 무엇으로 설명을 해야 합니까? 그러기에 남북통일은 우리민족의 인간 존엄성을 지켜내는, 천부적 인권을 보존하는 첩경일 것입니다. 철천지원수 같이 부르짖는 북한의 무지막지한 방송을 볼 때마다 섬뜩해지는 우리의 불안을 걷어내기 위해서라도 남북통일은 빨리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제 우리 오빠도 신체검사를 마쳤습니다. 진외가 할아버지가 전쟁 통에 돌아가신지 60여 년이 지났어도, 우리의 젊은이들은 아직도 원하지 않는 군대에 가야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하는 사람들이 직업적으로 군대를 간다면 그 군대의 힘은 더 커질 것이고, 다른 소질이 있는 사람은 다른 분야에서 젊은 시절부터 열심히 일을 한다면 우리의 국력은 더 높아질 것인데, 아직도 우리는 남북분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국력을 소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6월 6일이면, 산딸기 붉게 핀 밭둑에서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바쁜 일손을 멈추고 묵념을 올리던 우리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90세가 다 되어서도 언뜻언뜻 동생을 그리워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을지 말지 한 세월의 흐름에서도, 움푹 파여 아물지 않는 전쟁의 상처. 통일이여! 어서 오라! 다시는 우리에게 치매의 할머니도 잊을 수 없는 전쟁의 상처를 주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