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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선생전(麴先生傳) / 이규보 (李奎報)

문경사투리 2009. 5. 21. 10:40

국성(麴聖)의 자는 중지(中之)요, 관향(貫鄕)은 주천(酒泉)이다. 어렸을 때에 서막(徐邈)에게 사랑을 얻어, 그의 이름과 자(字)는 모두 서씨가 지어 주었다.

 

그의 조상은 애초에 온(溫)이라고 하는 고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었는데, 정(鄭)나라가 주(周)나라를 칠 때에 포로가 되어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였으므로, 그 자손의 일파가 정나라에서 살게 되었다. 그의 증조는 역사에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고, 조부 모(牟)는 살림을 주천으로 옮겨, 이때부터 주천에서 살게 되었다. 아버지 차(琲)에 이르러서 비로소 벼슬길에 나아가 평원 독우(平原督郵)의 직을 역임하였고, 사농경(司農卿) 곡씨(穀氏)의 따님과 결혼하여 성(聖)을 낳았다.

 

성은 어렸을 때부터 도량이 넓고 침착하여, 아버지의 친지들이 그를 매우 사랑하였다. 그래서 항상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아이의 도량이 만 이랑의 물과 같아서, 가라앉히더라도 더 맑아지지 않으며, 흔들어 보더라도 탁(濁)해지지 않으니, 우리는 자네와 이야기하기보다는 이 아이와 함께 기뻐함이 좋네."

 

성이 자라서, 중산(中山)에 사는 유영(劉怜), 심양(桺陽)에 사는 도잠(陶潛)과 벗이 되었다. 이들은 서로 말하기를, "하루라도 이 친구를 만나지 못하면 심중에 물루(物累)가 생긴다." 라고 하며, 만날 때마다 저물도록 같이 놀고, 서로 헤어질 때는 항상 섭섭해 하였다.

 

나라에서 성에게 조구연(糟丘椽)을 시켰지만 부임하지 않자, 또 청주 종사(靑州從事)로 불렀다. 공경(公卿)들이 계속하여 그를 조정에 천거하니 임금께서 조서(詔書)를 내리고 공거(公車)를 보내어 불러 보고는 말하기를, "이 사람이 바로 주천의 국생인가? 내가 그의 명성을 들어온 지 오래다." 라고 하셨다.

 

이보다 앞서 태사(太史)가 아뢰기를, 주기성(酒旗星)이 크게 빛을 낸다 하더니, 얼마 안 되어 성(聖)이 이른지라 임금이 또한 이로써 더욱 기특히 여겼다.

 

곧 주객 낭중(主客郎中) 벼슬을 시키고, 이윽고 국자좨주(國子祭酒)로 올리어 예의사(禮儀使)를 겸하니, 무릇 조회(朝會)의 잔치와 종조(宗祖)의 제사·천식(薦食)·진작(進酌)의 예(禮)에 임금의 뜻에 맞지 않음이 없는지라, 위에서 기국이 둠직하다 하여 올려서 후설(喉舌)의 직에 두고, 우례(優禮)로 대접하여 매양 들어와 뵐 적에 교자(轎子)를 탄 채로 전(殿)에 오르라 명하여, 국선생(麴先生)이라 하고 이름을 부르지 않으며, 임금의 마음이 불쾌함이 있어도 성(聖)이 들어와 뵈면 임금은 비로소 크게 웃으니, 무릇 사랑받음이 모두 이와 같았다. <중 략>

 

[중간 줄거리] 국성은 미천한 존재로서 출세하나, 국정을 어지럽힌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이 일로 죄를 입어 그의 세 아들은 자살하고 성도 연좌(連坐)되어 서인(庶人)이 되기까지 한다. 성은 야인(野人)으로 있으면서도 국란(國亂)이 일어나자 출정(出征)하여 희생 정신을 발휘하고 공을 세운다. 그리하여 벼슬을 받으나, 상소하고 물러나와 제 본분을 지킨다.

 

사신은(史臣)은 말한다.

국씨는 원래 대대로 농사짓는 집안이었는데, 성이 유독 넉넉한 덕이 있고, 맑은 재주가 있어서 당시 임금의 심복이 되어 국가의 정사에까지 참예하고 임금의 마음을 깨우쳐 주어 태평스러운 시절의 공을 이루었으니 장한 일이다. 그러나 임금의 사랑이 극도에 달하자 마침내 국가의 기강을 어지럽히고 화(禍)가 그 아들에게까지 미쳤다. 하지만 이런 일은 실상 그에게는 유감이 될 것이 없다 하겠다. 그는 만절(晩節)이 넉넉한 것을 알고 자기 스스로 물러나서 마침내 천수(天壽)로 세상을 마쳤다. 주역(周易)에 '기미를 보아서 일을 해 나간다[見機而作]고 한 말이 있는데, 성이야말로 거의 여기에 가깝다 하겠다.

<동문선>

 

 

[어휘 풀이]

서막(徐邈) : 위나라 사람으로 지독한 애주가. 국법으로 금하는 밀주를 만들어 마셨음

차(琲) : 흰 술을 의인화한 말

사농경(司農卿) : 사농시(司農侍)의 벼슬아치. 사농시는 제사에 쓰는 미곡과 적전(籍田)의 일을 맡아 보던 관아

유영(劉怜) : 위 진 시대 죽림 칠현의 한 사람. '주덕송(酒德頌)'을 지음

도잠(陶潛) : 옛 중국 동진(東晋)의 시인인 도연명의 본명

청주종사(淸酒從事) : 질이 좋은 술. 원래는 무반(武班) 잡직의 벼슬

천식(薦食) : 천신(薦新)할 때 올리는 음식. 계절 따라 새로 난 과일이나 농산물을 신에게 바치는 일을 천신이라 함

진작(進酌) : 임금께 나아가 술잔을 올림

기국(器局) : 사람의 도량과 재간

 

 

* 이규보(李奎報 1168-1241) 고려 시대 문인.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지헌(止軒), 1189년 사마시, 이듬해 문과에 급제, 걸출한 시호(詩豪)로서 호탕 활달한 시풍으로 당대를 풍미했으며,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감상을 적은 즉흥시로 유명했다. 처음에는 도연명의 영향을 받았으나 개성을 살려 독자적인 시격을 이룩했다. 시와 술, 거문고를 즐겨 삼혹호(三酷好) 선생이라 자칭했다. 저서로는 <동국이상국집>, <백운소설> 등이 있다.

 

 

* '국선생전'과 '국순전'과의 관계

이규보의 '국선생전'은 임춘의 '국순전'과 마찬가지로 술(누룩)을 의인화의 대상으로 하였지만 그 주제는 다르다. '국순전'은 도량과 인품을 갖추고 있는 국순이 방탕한 군주에게 등용하게 되었다가 세상을 어지럽히고는 은퇴해서 곧 죽었다는 내용으로, 정사를 돌보지 않는 군주까지 비판하면서 술로 인한 폐해를 드러낸 것이다. 반면에 '국선생전'의 국성은 도량이 크고 성품이 어질며 충성이 지극한 긍정적 인물로 서술되었다. 국성이 '국선생'이라 불린 점이라든가, 만년까지 제 본분을 지키고 화평한 삶을 누린 것이 이와 같은 인식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두 작품은 술의 내력, 성질, 효능 등을 사람의 개성, 기질, 욕구 등으로 의인화하는 수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나, 사건 구조와 인물형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 가운데서 술의 효능과 가치를 훨씬 긍정적으로 표현한 쪽은 물론 이규보의 '국선생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