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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겨울나무가 봄을 기다리는 심정

문경사투리 2009. 6. 22. 20:36

죽은 겨울나무가 봄을 기다리는 심정

한옥임 여사의 ‘나의 인생’을 읽고

 

교육을 갔다 온 내 책상에는 고도현 기자의 팔순 할머니가 팔십 평생의 회고를 담은 책 ‘나의 인생’이 놓여있었다. 20포인트의 굵은 글씨로 49쪽이었다. 책이라 하기에는 그 분량이 너무 적었으나, 행간에 들어 있는 표현해 내지 못한 언어는 수 만권의 책으로도 모자랐다. 가슴 뭉클한 사랑과 한이 가득 차 있었다. 먼저 가신 이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 그럼으로써 더 그리워지는 마음이 책 가득히 들어 있었다. 그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쌀 세되, 간장 찌꺼기 두 사발의 초가집에는 지붕을 인 짚이 썩어, 뱀이 기어 다니다 떨어지고, 골이 져서 비까지 샜다. 고향에서는 이런 집을 새롭게 할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 달 된 핏덩이 아들을 안고 ‘죽은 겨울나무'가 봄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고향, 덕암을 떠났던 것이다.

 

그리고 천지신명의 도움으로 상주군청 수의과에 남편이 취직을 했고, 이때부터 한 여사는 근검, 저축을 하며 봄을 기다려 왔다. 동지섣달 설한풍에 냉방에서도 지냈고, 두세 달에 타오는 월급인 쌀과 보리쌀로, 쌀은 팔아 돈으로 하고, 보리쌀로만 양식을 하는 생활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못난 자존심’을 지키며 남들한테 비굴하지 않게 무엇이든 빌리지 않고 살았다.

 

불같은 성격의 남편을 ‘적막강산’처럼 우러르며 살아 온 한 여사. 아들 성적이 떨어졌다고, 책과 교복을 불사른 그 불같은 남편에게서 어디 하소연할 곳도, 마음 붙일 곳도 없었다. 당제 한약건재상으로 나름대로 재미도 붙이고, 살림도 늘리고, 그런 일이라도 없었으면 숨조차도 못 쉬었을 것이다.

 

그 후 군청에 있던 남편이 작은 언론사에 발을 붙이고, 상주 복룡동에 집을 장만하기도 했다. 고향을 떠나 온지 5년 만이었다. 그리고 다시 남편은 당시 여당지인 ‘서울신문사’로 옮겨 지사장이 되었다.

 

그러나 남편은 호걸남성을 자칭하고, 평화신문을 인수한다고 서울로 가서 여자만 하나 데리고 오는 기절초풍할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여자는 약해도 어미는 강철보다 강하다.’고, 한 여사는 이런 사정을 지혜와 슬기로 말없이 해결하였다. 그러나 속은 썩을 대로 썩고, 허물어질 대로 허물어졌다. ‘너무 참아서 목, 얼굴 전체가 붉어지고, 상의는 앞이 막힌 것은 답답해서 입지 못하여 앞을 파서 입고, 잠이 들면 헛소리와 잠꼬대’를 한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남편은 호걸남성답게 기관장, 유지들과 이런저런 모임을 해대며, 집을 마치 초대소가 되는 것처럼 들볶았다. 벌여놓은 사업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허구한 날 이런 지경이니, 한 여사가 사업을 꾸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중에 ‘삼일연탄공장’을 하게 되었다.

 

한 여사는 계속되는 남편의 호걸남성 행세에 남자가 해야 할 일을 연탄공장을 하면서도 쉴 수없이 해야 했다. 연탄아줌마에 경영까지 다 해서 성공을 했지만, 전부 남편이 잘 해서 구김 없이 사는 줄 남들이 알도록 처신했다. 그래서 고향 평지에 논도 사고, 농사도 짓고....

 

그 후 금성대리점을 열고, 많은 판매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걸남성답게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할 남편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외상으로 다른 판매점에 물건을 대 준 것이다. 집과 땅을 다 본사에 잡힌 상태에서 실속 없는 판매고만 높이 올렸던 것이다. 대기업의 냉정한 처사에 1억 4천만원이 넘는 부채를 한 푼도 탕감 받지 못하고, 3년 동안 전국을 찾아다니며 수금을 해서 갚았던 것이다.

 

그래도 한 여사에게 첫돌을 지난 예쁜 장손 ‘도현’이가 들어 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을 느꼈다. 비록 도현이가 엎어지면 ‘엄마’하지 않고, ‘할매’하며, 일어났지만, 그래서 그것이 못내 가슴 아프고 애처로웠지만, 남편이 썩이는 속을 도현이가 풀어 주었기에, 세상을 다 얻은 기분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번 돈하고, 빌린 돈으로 새로 대지를 사고, 극장을 지었다. 그러나 남편은 종문회 일로 또 다른 호걸남성의 길을 갔다. 극장 운영을 잘 해서 하루빨리 빌린 돈을 갚아야 할 처지임에도 호걸남성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 때 마침 어린 도현이가 한 여사의 일을 거들었다.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면 길이 있는 법이다.

 

우리 부모님들은 늘 말씀하신다. 내가 살아 온 이야기를 쓸려면 책 몇 권은 된다고. 그렇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죽지 못해 살아 온 당신들. 그러나 그 힘든 과정의 고생을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고, 지금은 오히려 걸리적거리는 존재가 되어 버린 당신들. 그러나 한 여사에게는 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손자, 아니 아들 ‘도현’이가 있으니, 그나마 큰 다행이라 할 것이다.

 

지금도 우리 이웃엔 한 여사 같은 분들이 얼마나 천대받고, 질시 받으며, 지나온 고생에 보답받기는커녕,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한 여사의 ‘나의 인생’이 그래도 해피앤딩이라서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