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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독후감)

문경사투리 2009. 8. 9. 21:48

할매를 부탁해

-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문경서중학교 3학년 1반 고유진


우리 온 가족은 우리 할매가 아파서 그런 줄을 몰랐다. 우리 할매는 무쇠도 녹이는 삶의 연금술사인 줄 우리는 알았다. 할매는 못하는 게 없었고, 한여름 뙤약볕에도 그을리지 않는 철인인 줄 우리는 알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여섯 식구의 아침밥을 짓는 일은 밭일이나 다른 집안 일 사이사이에 하는 여가 일인 줄 우리는 알았다.

 

그런 할매가 느닷없이 한밤중에 아침이야기를 하고, 밥을 짓다가 전기를 꽂지 않고, 설거지를 하면서 세제를 쓰지 않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할매에게 화를 내고, 할매에게 성을 냈다. 그럴 때마다 할매는 전에 같지 않게 화를 내고, 심지어 욕까지 해댔다. 언니와 나는 그런 할매가 더 미워 같이 소리를 지르고 대들었다.

 

우리 삼남매를 업고, 안고, 걸리면서도 남부럽지 않게 길러주신 우리 할매가, 우리들의 온갖 투정에도 오냐, 오냐 하시며 다 받아주시던 우리 할매가, 흩어져 자는 우리를 다독다독 몰아서 이불을 덮어주시고, 요를 깔아주시던 우리 할매가, 큰집과 고모네 집에 온갖 밑반찬과 갖은 알곡들을 준비해 주시던 할매가 이럴 줄은 미처 몰랐다.

 

치매라고 했다. 한자로 치매(痴呆)를 풀어보면, ‘아는 것(知)에 병이 들어(疒) 어린아이(呆)가 되는 것’이라고 아빠는 말씀하셨다. 그랬다. 우리 할매는 네 살 난 옆집 조카보다도 때로는 더 많은 것을 몰랐다. 나를 몰라보고, 아빠를 몰라보고, 엄마를 몰라 볼 때가 종종 있다.

 

이런 때,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다. 구절구절이 우리 할매의 이야기였다. 생일을 차려 먹기 위해 서울 아들네 집에 나섰다가 복잡한 지하철 서울역에서 소설속의 엄마는 실종되었다. 그로부터 시작되는 이 소설은 엄마의 실종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엄마의 존재를 생각하게 되고, 자식들과 남편이 엄마, 아내의 존재를 돌이켜보는 이야기다. 우리도 할매의 생신을 위해 서울 나들이를 몇 번 했다. 그때마다 우리 중 한사람은 할매를 꼭 붙잡고 다니도록 역할을 맡아야 했다.

 

한 번은 할매가 우리가 없는 사이 큰집에 있으면서, 멋도 모르고 집을 나섰다가 집을 잃어버릴 뻔 했다고 나중에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 할매는 우리와 함께 시골에서 마음 놓고 지내야 할 팔자인가 보다고 생각했었다.

 

이 소설에서 엄마는 언제나 큰아들 ‘형철’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사셨다. 장남에 대한 우리 전통의 기대와 역할에 대해 엄마는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사셨던 것이다. 장남을 위해 더 많은 배려와 더 많은 걱정을 하셨으면서도, 한 가정의 대를 이어나가야할 장남이기에, 지고 가야할 무형의 짐이 많기 때문에 엄마는 ‘미안하다, 형철아’라고 했을 것이다. 우리 할매처럼...

 

우리 할매도 언제나 큰아빠가 오셔서 용돈을 주시면, ‘애비야, 미안하다. 고맙다. 아무 것도 못해 좃는데, 돈 한 푼 못 좃는데...’하시면서 연신 울먹이신다. ‘엄마가 아들을 이렇게 잘 키워 주셨잖아요.’하시는 것은 큰엄마였다. 큰아빠도, 아빠도 할매의 그런 모습에서는 눈시울을 붉힐 뿐, 아무 말도 못하시는데....

 

우리 할매도 교회에 나가신다. 교회엔 나가시지만, 내가 보기엔 아무 것도 모르고 다니시는 것 같다. 큰아들이 다니시라고 하니까 그냥 나가시는 것 같다. 할매도 이 소설 속의 엄마처럼 열네 살에 시집 와서 4대의 제사를 받들어 모셔왔다. 여덟 번의 제사와 두 번의 명절 제사, 한 번의 시사까지 열 한 번의 제사를 차려 오셨다. 50년 이상을 그렇게 제사를 지내오시다가 어느 날부터 제사를 지내지 않는 교회엘 나가니 많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아빠는 할매가 덜 혼란스러우라고, 3대의 제삿날과 명절, 시사 때마다 할매와 우리들이 함께 둘러 앉아 추도예배를 드리게 한다. 그럴 때마다 할매는 주문을 외신다. 그 주문은 하나님이 아닌 조상님들에 대한 것이다. 그러니 할매의 교회는 우리 집의 대를 이어가는 큰아빠에 대한 거역할 수 없는 명령 탓이지, 할매가 하나님을 알고, 교리를 알아서 다니는 것은 아니다. 이렇듯 우리 할매는 장남에 대해 늘 미안하고, 늘 죄스러운 삶을 사시는 것이다.

 

이 소설은 ‘나’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대부분의 소설의 형식이 아니라, ‘너, 당신, 그’ 등의 시점으로 씌어져 읽기가 다소 불편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소설을 읽었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남겨 주었다. 특히, 우리 할매와 같은 처지의 ‘엄마’가 등장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소설이 신에게 장미묵주를 놓고 부탁한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대신, 나는 ‘할매를, 할매를 부탁해’라고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