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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 달밤에

문경사투리 2009. 9. 4. 23:58

 

 

백중 달밤에


아들을 안고 자 보고 싶다.

내 굵은 다리와 허벅지로

네 놈을 꼼짝 못하게 주리 쪄

이 푸른 달밤을 홀딱 새고 싶다.


아무도 걷지 않은 눈 위를

철없이 훠이훠이 걸어왔던

너와 나의 이십년 동행


할머니 품에 안겨 잠들려는 너를

내 품으로 끌어 올 때

‘왜 이래여.’하시던 할머니의 눈 흘김과

‘안 돼. 안 돼.’하던 너의 응과

앞산의 새소리와

까치 샘의 물소리와

옆에서 이런 소란에 겨워

부스스 뒤척이던 네 엄마와

고물거리던 네 어린 여동생들과

마흔의 나 


지금은 훌쩍

나를 우듬지로 밀어낸

푸르디푸른 네 청춘의

청솔 그루터기에 앉아

45세에 나를 낳고

먼 길만 찾아 나섰던

내 아버지의 근엄한 모습을

백중(百中) 달에 비춰본다.


동구 밖을 휘돌아

희뿌연 사위(四圍).

아버지가 그랬듯이

안 오는 줄 아는 너를

나도 기다리고 있다.


(2009. 9. 4 / 음력 7.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