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사과 (1) 그 인연
문경사과(1)
그 인연
고성환
내가 사과를 처음 만난 것은 유아시절 제사 때다. 아래 위를 깎아 접시 위에 공개 놓았던 것인데, 우리 형제들은 그 껍질을 서로 먹으려고 쟁탈을 부렸다. 껍질을 쟁탈했으니 사과 몸통은 제사 지내고 가장 탐나던 음식이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달고 신 맛이 어우러져 사과 고유의 향과 맛이 났다. 무엇보다도 과즙이 많이 나와 목 넘김이 좋았다.
그러다가 조금 철이 들면서 사과나무에 사과가 달린 것을 1960년대 중반에 보았다. 집 앞에는 뒷집 큰 밭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큰 감나무가 빙 둘러있고, 대추나무가 군데군데 있었으며, 눈이 잘 띄지 않는 곳에 사과나무가 줄지어 5그루 정도 있었다. 홍옥이었다.
가을이면 햇살에 더 붉게 빛나던 이 사과는 범접할 수 없는 에덴동산에 있었다. 집에서 엄마는 그 나무 가까이 가지 말라는 주의를 항상 빠뜨리지 않았다. 집주인의 감시도 늘 CCTV이상으로 촘촘했다. 그럴수록 사과에 대한 이끌림은 강열했다. 멀어질수록 탄력성이 강해지는 용수철처럼 잠시 틈만 나면 달려들 준비가 돼 있었다. 그때 사과는 주인 몰래 따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는 걸 알았다.
그 맛을 본 후 1970년대 초 문경의 마성면 정리로 이사와 살게 됐는데, 이곳 ‘서디’에는 두 개의 큰 사과밭이 있었다. 이 마을 선각자 박노항 어른과 박세구 어른의 밭이었다. 두 분은 나이 차이가 10여년 났는데, 이장을 이어가며 했던 분들로 내가 전에 살던 곳에서 보았던 그 사과나무를 심었던 때 정도에 이 사과나무를 심었던 것 같다.
우리는 사과를 먹기 위해 집에 없는 보리쌀을 갖고 ‘서디’로 넘어가야 가야했다. 그러나 보리쌀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1년에 한 번 정도 사먹을지 말지 할 정도였다. 거기다가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누나들을 따라 가 사는 일을 멀리서 볼 수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귀한 보리쌀로 바꿔온 사과 양은 너무 적었고, 그런 만큼 맛은 더 좋았다. 국광과 홍옥, 좀 더 굵고 색다른 맛은 인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