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전씨 관향비 건립
문경전씨(聞慶錢氏) 관향비(貫鄕碑) 건립
우리나라 330여 본관 성씨 중 문경을 본관으로 하고 있는 문경전씨(聞慶錢氏)의 관향비(貫鄕碑)가 12월 29일 문경읍 로타리클럽 공원에 세워졌다.
문경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문경 송씨’, ‘영순 태씨’가 있으나, 그 후손들은 문경에 살고 있지 않다.
이에 반해 문경 전씨는 문경읍을 중심으로 150여 호가 문경시내 골고루 살고 있다.
특히 시조(始祖) 전유겸(錢愉謙)의 산소가 마성면 모곡리 성주봉 아래 잘 모셔져 있다.
문경전씨는 시조 전유겸은 원나라에서 용도각직학사(龍圖閣直學士)를 지냈으며, 1351년(공민왕 1)에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를 배행하고 고려에 들어와 살게 돼 평장사(平章事)가 되고 최영(崔瑩) 장군의 누이와 혼인해 개경(開京)의 천장교(天章橋) 옆에 정착했다.
그의 벼슬은 정당문학(政堂文學)에까지 이르렀으며, 1388년(우왕 14)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최영 장군이 피살되고 고려가 망하자 이에 항거하다가 관산(冠山)에 유배돼 조령산(鳥嶺山) 남쪽에 살았다고 한다.
그 이후 문경에 살아온 문경전씨 후손들은 부침을 거듭하다가 18세기 초 조선 정조, 순조 때 전도석이라는 분이 문경의 부호로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에 올랐다.
전도석은 문경현의 큰 폐단이었던 화전세, 남봉 문제를 해결하고 1810년 흉년에 천석을 희사한 인물로 일성록에 그 내용이 기록돼 있다.
또 그의 맏아들 전덕례도 아버지 뜻을 이어받아 1814년 흉년에 이백 석을 희사했으며, 이 두 부자를 기리는 공덕비는 1817년 문경읍 마원리 새재들 복판에 세웠었다. 이 공덕비는 몇 년 전 마성면 모곡리 시조묘 부근으로 옮겼다.
그 뒤 유명한 인물로는 초대 노총위원장, 초대 사회부장관,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전진한(錢鎭漢), 우리나라 최초로 함창협동조합을 설립한 전진한의 형 전준한(錢俊漢), 배우 전인화(錢忍和) 등이 있다.
비석은 높이 3m정도 되는 화강암에 세로로 ‘문경전씨관향비(聞慶錢氏貫鄕碑)’라고 썼으며, 그 옆에 전경홍 수필가가 쓴 ‘문경전씨(聞慶錢氏)의 유래(由來)와 행적(行蹟)’을 새겼고, 이 비석 뒤에 ‘2세손 전진(錢珍)공의 망향시(望鄕詩)’ 7언 절구를 새겼다.
이 비는 문경시가 문경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2천만원을 보조해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홍 22세손은 “우리 시조께서는 중국 관리로 일하시다가 고려 노국공주가 귀국할 때 배행하고, 한국에 정착하셨다.”며 “그 이후 우리 후손들은 선조들의 의롭고 선량한 행적들을 계승하여 길이 변치 않는 가풍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문경매일신문 편집국장 고성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