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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어느 봄날
    카테고리 없음 2008. 4. 21. 09:44

    어느 봄날

    수필가 고성환


    올봄은 유난히 이르게 왔다가 이르게 가버렸다. 어느 새 한낮의 기온이 25도를 웃도는 초여름의 날씨가 돼버렸다. 산 벚꽃이 아름다운 진남교 주변의 산들도 어느새 벚꽃이 지고, 그 자리에 새 잎이 무성하다. 계절처럼, 자연의 풍광처럼 우리 아이들도 약동하고 있다.


    걸이는 처음 맞는 대학생활, 처음 맞는 서울생활에 가족 간 별리의 아픔도 없는 듯하다. 대학 입학 후 한 번을 다녀가더니 통 올 생각도 없다. 생각 나 전화를 해 보면 목소리에 늘 새로운 것들을 접하고 있는 설렘과 들뜸이 가득하다. 때로는 부아가 날 정도로 전화를 빨리 끊어달라는 투의 말도 들린다. 좋다. 놓아준다. 10여 년 전, 할머니와 걸이와 경희, 유진이가 방학을 맞아 고모네 집을 갈 때, 나는 이미 너희들의 세계로 훨훨 날아 갈 것을 기도했지 않았던가? 많은 것들을 보고, 많은 것들을 들으며, 많은 것들을 경험하여 젊은 날 네 초상이 웃음으로 가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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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파일 어느봄날.hwp


    고등학교에 입학 한 경희는 오빠에 비해 울상이다. 내심은 그렇지 않지만, 나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면 때로는 가슴이 답답할 때조차 있는 것이다. 꼴찌를 달리는 학업성적으로 인해 경희는 많이 울상이다. 좋은 대학에 간 오빠도 1학년 때는 그랬다고 위로해도 자신의 현재 처지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자신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큰 고민으로써 당연히 그럴 것이지만, 제 오빠에 비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은 틀림없다. 나는 경희에게 공부의 감을 잡으라고 일렀다. 감만 잡으면 지금 네 실력은 350점, 즉 백분율로 따져 70점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긍은 못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 지난 일요일에 학교 숙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늘 전화가 왔다. 모의고사 338점. 영어 듣기평가 85점. 제 목소리도 들떠있었지만 사실은 내 목소리가 더 들떴었다. 그래, 이제 너도 오빠처럼 탄력을 받는 거야. 그러면 너는 오빠보다도 확실히 더 좋은 결과를 얻을 거야. 평균 90점은 받을 수 있어. 하루하루 늘 하던 것처럼 공부하면 진짜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너의 능력을 의심 없이 믿어.

       

    중학교 2학년이 된 유진이는 이른 귀가를 했더니만, 책상에 앉아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저녁도 옳게 먹지 않고, 공부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너무도 기분이 좋고, 그 모습이 기특했다. 어머님이 해 놓은 상추쌈을 먹으면서 나는 연신 유진이에게 한 쌈씩 밥을 먹여 주었다. 거실에서 안방까지 상추쌈을 싸서 열 번 남짓 달려가 먹였다. 유진이는 행복에 포만한 표정으로 덥석덥석 잘도 받아먹었다. 1학년 수석 수료에 2학년 올라 장학금까지 받았던 유진이는 이를 유지하기 위해 힘을 내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엔 오빠와 언니가 집을 떠나 제 혼자 있는 분위기가 어색해 자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더니, 이젠 제 혼자 남아 공부하는 분위기를 잡은 듯하다.


    아이들이 모두가 공부라는 마술에 걸린 듯하다. 나는 더없이 고맙고 행복했다. 밖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봄이 저녁바람을 타고 나타나는 듯했다. 봄의 훈풍이 코끝을 짜릿하게 찔러 오는 저녁. 더없이 하나님께 감사한 시간이었다. 아멘.

    (2008.4.18)

    출처 : 문학세상
    글쓴이 : 국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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