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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효도의 방식
    카테고리 없음 2008. 5. 10. 13:41


    수필가 고성환


    어버이날이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어머니날이라고 하던 날이다. 그러던 것이 고학년이 된 어느 때부터 어버이날이라 했고, 6학년 시험에 ‘부모’가 우리말로 무어라고 하는가? 라고 하여 나는 어버이날을 생각.  ‘어버이’라고 썼는데, 다른 많은 친구들은 이 문제를 맞히지 못했던 기억이 있는 날이다. 그것이 1975,6년 쯤 되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매년 어버이날을 맞고 보냈다. 그 속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함께 사시던 외할머니도 돌아가셨다. 30년의 세월이 한 세대를 바꾸어 놓았다. 이제 내 아이들이 어른의 코밑에 와 있는 것이다.


    어버이날 가장 손쉽고 표시 나는 효도의 방식은 어머니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꽂아 드리는 것이었다. 이 꽃은 문방구나 가게에 가면 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처음 철이 들고 어머니께 이 꽃을 달아 드릴 땐 뭔가 좀 쑥스럽고 머쓱하던 양심이 아직도 생생하다. 진정으로 어머니를 위해 내가 해드린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가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어머니를 위해 꽃을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만든 종이꽃을 가져 와, 어머니와 우리 내외의 가슴에까지 달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도 한 때던가? 이젠 아이들이 바쁜 세상 속으로 들어가면서 새삼 내 손으로 다시 어머니를 위해 뭔가를 해드려야 할 어버이날을 맞았다. 3남매의 아이들 중 두 명이 학교 때문에 집을 나갔고, 함께 살고 있는 중학교 2학년 막내딸이 카네이션 꽃 화분을 한 개 사긴 했지만, 이제 이 아이도 어버이날을 한 번만 더 지나면 집을 나갈 것이다.


    어머니는 그래도 아직 막내 손녀딸의 재롱이 남아 있는 집에 계시니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 때, 서울에 계신 막내 자형의 전화가 왔다. 어버이날이라고 자기의 어머니와 장모님을 뵙고 가려고 아침 일찍 서울에서 내려와 들렀다 가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그렇다 쳐도 나의 장모님은 혼자 내 이웃에 살고 계시는 것이 생각났다. 서울에서 오 백리 먼 길을 달려 와 혼자 계신 자기의 어머니와 장모님께 돈 봉투 하나씩 드리고 가시는 자형의 목소리는 괜히 나를 찔리게 하였다.


    자형은 얼마나 기분 좋았으랴. 신 새벽에 일어나 어머님께 드릴 작은 돈 봉투 하나 들고 나섰을 때의 홀가분한 그 마음. 오 백리 먼 길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으리라. 물론 단돈 천 원짜리 카네이션 꽃도 어젯밤에 사두었다가 같이 가지고 왔을 것이다. 그 꽃마저도 생기가 북돋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웃에 있는 장모님을 위해 아무 생각도 없었다니, 기막힌 나의 세상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돈이 없다는 핑계로, 마음마저도 바쁘고 가난한 나의 세상이여.

     

    얼른 봉투를 마련하였다. 장모님에게 달려갔다. 5분 만에 다다랐다.  봉투를 내밀기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그 봉투 안에 있는 것보다 수십 배, 수백 배의 민폐를 끼쳤던 지난 과오가 그 봉투의 두께로부터 주눅 들게도 했다. 사실은 그것 때문에 여러 해 동안 장모님께 작은 정성을 표시하지 못했다. 워낙 컸던 나의 과오로부터 그런 내 작은 정성은 너무도 무의미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마저도 할 수 없었던 몇 년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작은 정성과 작은 웃음과 작은 눈물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는 말이 생각났다. 큰 것으로, 한 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작은 땀방울과 작은 관심에 의해 이 세상은 만들어지고 있다는 시인의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 이제는 나의 지난 큰 과오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다시 처음 장모님을 만났을 때의 나의 자상함을 보여드리자. 아직은 비록 큰 어둠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지만, 세월이 더 가기 전에 어머니와 장모님께 작은 정성들을 쏟아 드리자. 5분이면 다다를 거리. 이젠 자주 찾아가보자. 매일 만나는 어머니를 위해 따뜻한 말 한 마디로 위로하자. 피곤하다고 ‘됐어.’했던 어머니의 자잘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자.


    子欲養而親不待. 어머니와 장모님은 너무도 연로하시다.

     

     

    (2008.5.10)

    출처 : 문학세상
    글쓴이 : 국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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