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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 별
용기는 대단한데 있지가 않다. 나의 일상을 뛰어 넘는데서 용기는 시작된다. 일상의 무료함을 뛰어넘는 그것. 용기는 바로 그것으로부터 출발하고, 그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별’은 바로 작가 황석영의 용기의 소산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고 하는 마음. 그것을 실천에 옮긴 행동. 학창시절의 편모슬하에서 성장한 작가의 모습은 다른 입지전적인 인물들과 반대편에 있으면서도 새로운 삶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버리라는 작가의 웅변이다. 유준과 그 친구들에 의해 펼쳐진 각양각색의 인생 파노라마는 그 자체가 어느 한 인생에 대하여 우리의 관념을 고정시키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사랑의 방식도, 공부의 방식도, 그리고 사고의 방식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그리고 그 어느 한 방식이든 그 방식을 비난하거나 내칠 것이 없는 숭고한 한 인생의 드라마라는 것을 ‘개밥바라기 별’은 보여주고 있다.
1990년인가? 황석영이 북한을 정부의 허락 없이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나 보내 온 말없는 메시지는, 나에게 큰 충격이었던 기억이 있다. 생각의 벽을 열어라. 생각의 방식을 바꿔라. 용기를 가져라. 그의 그런 메시지. 그 때도 솔직히 나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마치 큰 일이라도 난 것 같이 불안하였고, 그만큼 그를 비난했었다.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나도 모르게 세뇌된 어떤 고정관념에 의해, 내 나이 30이었을 때도 나는 그랬던 것이다.
그 이후 황석영의 길은 닫힌 남북 관념을 열린 광장으로 끌어냈고, 작가 자신이 옥고를 치르는 희생을 하고서도 오히려 우리들의 생각은 후련한 털어냄의 의식으로 자유로웠으니, 이는 오직 그의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을 관통하는 용기의 소산이었음을 이 소설은 웅변하고 있었다.
아직 유준의 길은 계속되고 있다. ‘샛별’을 향하든 ‘개밥바라기 별’을 향하든, 그의 자유는 정제된 고정관념의 틀이 가득한 이 세상이 다 하는 날까지 계속될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세속의 보이지 않는 틀에 얽매인 관념의 벽이 남아 있는 한, 나는 그래서 그를 부러워 할 것이다.
그의 끊임없는 자유를 향한 갈망으로 하여, 불을 뿜듯이 나오는 용기를 나는 부러워 할 것이다. 유행가의 가사처럼 ‘세 가닥 거미줄에 묶인 줄도 모르고’ 그것이 마치 인생의 한 표본인 양 살아가는 나의 무책임과 그 무지에 대하여, 나는 유준을, 아니 황석영의 사고와 행동을 인생이 끝나는 그날까지 부러워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자유여, 용기여! ‘개밥바라기 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