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쉰을 넘어서자 문득 세상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아등바등 살아온 지난날들이 그리워지기도 하고, 시들해 지기도 한다. 그 땐 왜 그랬을까 후회도 하고, 실없어지기도 한다.
어느 날 다윗 왕이 궁중의 귀금속 세공인을 불러 명령하였다. “나를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라. 반지에는 내가 크게 승리를 거둬 그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그것을 조절 할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도록 하라. 또한 그 글귀는 내가 크나큰 절망에 빠졌을 때, 용기를 함께 줄 수 있는 글귀여야 하느니라.”
왕의 명을 받은 세공인은 온갖 정성을 다하여 명령대로 아름답고 빛나는 반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반지에 새겨 넣어야 할 글귀가 생각나지 않아 깊은 고민에 빠졌다. 며칠을 고민하던 그는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에게 찾아가 도움을 청하였다. “왕자님, 왕의 큰 기쁨을 절제케 하는 동시에, 크게 절망 했을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솔로몬 왕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세공인에게 말하였다. “그 반지에 이렇게 써 넣으세요.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 -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라고...”
이 말을 듣지 못했던 아둔한 내 청춘은 얼마나 도도하고, 교만했던가? 마치 그날이 언제나 지속될 것처럼 얼마나 많이 나 자신을 높이고, 희희락락했던가? 또 얼마나 절망하고, 얼마나 가슴 졸였던가? 세상이 마치 끝난 듯이 갈등하고, 얼마나 많은 불만들을 종알거렸던가? 영광도 잠시, 고통도 잠시.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인데, 그동안 나는 왜 그리도 그 순간순간을 마치 내 삶의 전부인 양 좋아하거나 절망했던 것인가?
나는 내 삶의 절망이 극에 달했을 때 한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 말을 들었다. 그 뿐만 아니라, 내 내면에 잠자고 있던 잠재된 것들을 그는 꺼내주었다. 그는 마술사 같이 내 마음속을 훤히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에 맞게 대해 주었다. 마음이 울적하다고 하면 훌쩍 여행을 떠나 주었고, 눈물 많은 나를 위해 눈물 나는 영화들을 보여주었다. 여행이나, 영화를 통해 웃거나 울다보면 나는 나도 모르게 가슴 후련한 내 마음의 봄을 맞이했고, 거울처럼 맑은 내 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내 삶에 충고하지 않았고, 나의 행동에 비난도 하지 않았다. 너무 가깝게도 다가오지 않았고, 너무 멀리도 가지 않았다. 아쉬운 듯, 그리운 듯,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나를 위해 서있었다.
그는 인생론을 펼치며 훈도하지 않았고, 거창한 말들로 나를 피곤하게 하지 않았다. 종교를 들고 나를 구속하지 않았고, 내 친구라고 이름 해놓고, 다른 친구를 못 만나게 닦달하지 않았다. 내가 만나고 싶어 할 때 때로는 만나 줄 수 없다고도 하였고, 내가 보고 싶다고 할 때 거절할 줄도 알았다.
그래도 그는 늘 내 곁에 있었다. 바람같이 훌쩍 떠나지도 않았고, 구름같이 훌훌 날아가지도 않았다. 햇빛같이, 공기같이 그는 나를 언제나 숨 쉬게 하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그가 안달이 나서 다가왔는데, 도리어 내가 안달이 나게 되었다.
나의 우유부단함을 천사의 마음이라고 강조해 주었고, 친구들과 어울려 자주 밥값을 낼 때도 그렇게 칭찬해 주었다. 나는 그 말에 어느새 천사의 말을 하게 되었다. 남의 말을 좋게 하거나, 나쁜 말은 아예 하지 않는 습성을 갖게 되었다. 사람마다 다른 점을 인정할 줄 알게 되었고, 사람마다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말이 있다. 누구는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꾼다지만, 나는 관포지교를 꿈꾼다. 관중을 알아 봐 주고, 끝도 없이 이해 해 준 포숙아의 그 우정을 나는 이제 그에게 베풀 때가 되었다. 그가 나에게 포숙아의 관용과 사랑을 준 것처럼 나도 그에게 갚음을 할 때가 되었다. 
그는 나의 재능을 간파하고 있었으며, 그는 나를 이해하고 불평 한마디 없이 사이좋게 지내주었다. 우리는 같이 정치의 길에 나가 서로가 믿는 사람이 다르기도 하였으나, 그는 나를 헐뜯지 않았으며, 오히려 나를 다른 자리에 앉혀주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내 힘껏 일을 하였고, 마침내 나는 모두가 인정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내가 형편없던 시절에 나에게 이익이 많이 돌아가도록 언제나 배려하면서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 삶의 실패들을 치욕으로 말하지 않았고, 사람이 살다보면 실패도 성공도 있다고 인정해 주었다. 그 덕분에 이제 저축을 하면서 살게 되었다. 걸어 다닐 충분한 거리에 택시를 타고 다니는 것을 염치없다고 비웃지 않았고, 내가 너무 착한 나머지 부끄러움이 많다는 것을 알아주었다. 그래서 나는 천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우리의 희노애락은 언제나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 그러니 무엇을 기뻐할 거며, 무엇을 절망할 것인가?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진정으로 알아준 사람은 그 사람이다. 나는 나를 위해 솔로몬 왕자의 지혜를 꿈꿀 것이며, 그를 위해 관포지교를 꿈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