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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도리
    카테고리 없음 2009. 5. 23. 11:06

    지도리

    고경숙

     

    문이 여닫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아무 관심도 없이 그냥 여닫던 문인데, 퍽 신경이 쓰였다. 관심을 갖게 하였다. 살펴보니 지도리에 검은 기름때가 가득하였다. 청소한다고 구석구석 쓸고 닦았는데, 지도리만은 한 번도 쓸어주지 못하고, 한 번도 닦아주지 못했다.

     

    요 작은 물건에 언제 누가 기름은 발라 놓았으며, 10년이 넘는 동안 어째서 한 번도 고장 없이 지나왔는지 신기할 노릇이었다. 스프레이 약품을 사와 몇 번 뿌리고 화장지로 닦아냈더니 또 신기하리만치 이내 조용해 졌다.

     

    늦은 나이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제때 공부하지 못하고 시작한 공부가 쉬울 리가 없었다. 중학교 과정은 그래도 쉬웠으나, 올라갈수록 어려웠다. 떨어지는 집중력과 기억력이겠거니, 공부는 제때에 맞춰해야한다는 공자의 일갈(一喝)이 일리 있게 체험되었다.

     

    그렇게 제때 공부를 못한 것은, 우리시대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가난 때문이었다. 6남매의 다섯째인 나. 그것도 여자인 나. 오빠와 남동생 둘만이라도 잘 키워보자는 엄마 아버지의 무언의 방침에, 언니 셋과 나는 한 마디 불평도 못하고, 학업을 체념하였다.

     

    체념은 곧 우리를 직업 전선으로 내몰았고, 마땅히 우리에게 많은 돈을 주고 써 줄 곳은 없었다. 친척 언니 미장원을 시작으로 출발한 나의 직업전선은 고달픔만이 다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온 텅 빈 내 주변이 언제나 제일 괴로웠다. 몇 백리 떠나온 객지는 몸서리치는 외로움을 주었고, 사무치는 그리움을 주었다. 몸이 고된 것은 그 뒤의 일이었다. 지극히도 자식 사랑이 깊었던 엄마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한 이불을 덮고 자던 형제자매들에 대한 깊은 우애의 그리움은 어린 나에게 언제나 제일 큰 괴로움으로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50대 초반부터 시름시름 앓으시더니, 우리 집의 안과 밖은 모두 엄마의 차지가 되어 버렸다. 남아 있는 것이라곤 숟가락 밖에 없는 안과 밖을, 여덟 명의 가장으로 챙겨야 하는 엄마의 하루하루. 사무치는 그리움에 집으로 달려 와 보면 엄마는 언제나 비탈 밭에 가 계셨고, 집은 비어 있었다. 그래도 엄마의 훈훈한 정은 초라한 집안 가득 하였고, 바쁜 중에, 경황없이 사는 중에, 언제 씨앗을 뿌려 놓았는지, 집안에는 계절마다 채송화도 피고, 해바라기도 피었었다.

     

    밭으로 달려가 보면, 땀에 전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면서 달려오시던 호미든 엄마의 그 모습. 나도 그런 엄마를 따라 내 자식들에게 흉내를 내보지만, 엄마와 같은 깊고 진실한 정을 뿜어내지 못하는 것 같다. 뙤약볕 아래,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기고, 그야말로 새벽이슬 맞으시던 엄마. 그래도 언제나 마음만은 풍요롭고 푸근했던 우리 엄마. 그 엄마가 86세이시다. 작은 체구에 마음만은 큰손이셨던, 대장부를 능가는 자존심 높고, 지기 싫어하던 당당하시던 엄마. 그러나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겨우신 모양이다. 이제는 그만 정신을 깜빡깜빡 하신다.

     

    그럼에도 내 사는 재미에 엄마를 잊어버리고 지내는 날이 너무도 많다. 엄마에 대해 무심히 지내는 시간들. 오늘 지도리가 삐걱삐걱거리는 것이, 엄마가 나를 보고 싶다고 우는 것 같다. 우리 엄마는 일평생 남들이 관심 갖는 부분에 나서보지 못한 지도리다. 안 보이는 곳에서, 숨은 곳에서, 어두운 곳에서, 오직 자식들을 위해 쉼 없이 움직이던 지도리. 이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삐걱삐걱거리는 것이, 무심한 나를 부르는 엄마의 소리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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