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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위의 쪽지
막 한글을 깨치던 1학년 때,
학교를 마치고, 텅 빈 집을 들어서면
밥상 위에 보리밥과 된장을 얹어놓고
조각 천으로 만든 상보 위에
누나는 언제나, 쪽지를 남겨 두었다.
‘밥 먹고, 숙제 하고, 집 잘 봐.
순심이골 밭에 갔다 올게.’
어린 그 때도, 그 쪽지를 보면서
울먹이며,
누나가 돌아 올 때까지
밥 먹고
숙제 하고
집을 봤다.
먼 길을 갔다가 돌아 온 제 오빠가
곤히 자고 있는 아침.
차마 깨우지 못하고, 학교 가는 동생이
쪽지를 남기고 갔는데...
‘오빠, 학교 빨리 갔다 올게 ㅎ, 3시 30분까지 집에 옴.
아침, 점심 잘 먹고 계세요.
I will be back ㅋㅋㅋ
아니면 걍 잘 갔다 오시던지요 ㅎ ㅠ ㅠ ㅃ 2 ㅎ ㅎ
- 유자 -’
제 오빠는 어쨌는지 모르겠는데
괜히 내 얼굴이 찡찡 울리고
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