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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원규 시인
    카테고리 없음 2010. 8. 22. 00:28

    이원규 시인


    고성환

    2010년 8월 20일 밤. 1985년부터 찾던 이원규 시인을 처음 만났다. ‘영남옛길 컬쳐텔러 양성과정’에 강사로 온 것이 기회였다. 방송통신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시인이 하내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문경 학생회에서 그의 시를 [초대시]로 모셨다. 하내와 붙은 마을에 살았고, 하내가 고향인 직장 동료가 있어 이리저리 그의 근황을 들었었지만, 만나고 싶은 갈증을 풀지는 못했었다. 그런 그를 만나니, 마치 정들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이 정다웠다.

     

    그의 어디에 그런 깡과 용기가 있는지, 외모와 언행을 보아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정답고 소탈한 그의 웃음. 마치 발가벗고 구랑리에서 미기, 텅어리, 꺽지 잡아 매운탕이라도 끓여 먹었던 것 같았다.

     

    그에 대한 경험을 여기 아깝게 적어둔다.


    시인, 환경운동가. 경북 문경시 마성면 하내리(선친은 신현리)에서 1962년 출생. 1970년 서성초등학교, 1976년 가은중학교. 이 때 시인 문욱현 시인을 국어 선생님으로 만남. 문경종합고등학교 기계과 1학년 때 학교를 자퇴하고, 백화산 만덕사에 들어갔으나, 10·27 법난 때 하산 당했다. 검정고시를 보고 계명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고, 1984년에 휴학하고서 흥성광업소에서 막장 광부로 일했다. 이 때 그는 ‘순례(巡禮)의 바람 - 폐광촌-’을 한국방송통신대학 학우회 문경분회의 사화집 ‘주흘(主屹) 제11집’에 초대시로 게재하였다.


    순례(巡禮)의 바람

         - 폐광촌-

    이원규


    1.

    갈대가 갈대를 안고 쓰러지던

    허기진 幼年의 새벽江

    물안개의 풍만한 젖가슴에 얼굴을 가리고

    버들피리 구멍구멍 흐느끼는 바람을 따라

    食口들은 故鄕을 떠났다.

    (바람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피곤한 등줄기와 마른 허벅지

     그리고 가려운 겨드랑과 충혈된 눈빛을 떠나

     바람은 자꾸만 어디로 가는 것일까)


    2. 

    누구도

    바람의 고향을 묻지 않았다.


    검은 江의 上流로 거슬러온 바람은

    世上에서 적당히 失敗한 사람 몇을 데리고

    食口들의 마지막 기착지(寄着地)

    지금은 폐광촌이라 불리우는 마을에

    짐을 풀었다.


    거기에도 

    새벽江 엔 안개가 내렸고

    안개는 서로의 창백한 얼굴을 가려 주었다.

    안개가 걷히면

    강바닥은 시커멓게 떠오르고

    갈대는 갈대를 찾아 헤매고 있었지만


    그림자도 없이

    탄맥의 나이테를 찾아가는 광부들이

    막장에서 무사히 돌아와

    식구들의 그리운 이름을 불러 줄 때까지

    안개는 좀체로 걷히지 않았다.


    3.

    광산촌의 밤은 참으로 길었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라도 잠결을 스치면

    젊은 아내는 월빼미처럼 잠들지 못했다.

    을방 혹은 병방 작업을 떠난 사내를 기다리며

    어째서 이 마을엔 과부들이 많은지를

    젊은 아내는 새삼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꿈의 슬픈 음계를 밟으며

    속살을 헤집고 들어온 바람이

    어디론가 하나씩 하나씩 빠져나가던 날,

    기어코 갱도의 천판(天板)은 무너져 내리고

    사고가 났다.


    반 주검을 들쳐 업고 읍내 병원으로 달렸지만

    왼 종일 동구(洞口)밖을 서성이던 바람의 어깨는 무너져 내리고

    끝내 선산부 박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모두들 눈물로 빚은 술을 마셨다.

    더러는 쓰러져 울고 더러는 주섬주섬 짐을 챙겼지만

    식구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것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안개가 걷힐 때까지

    마을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잘 길들여진 가축들처럼

    다시 갱 안으로 돌아갔고

    박씨의 젊은 아내는 읍내로 떠나

    죽음으로 지불된 여관을 차렸다.

    (바람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피곤한 등줄기와 마른 허벅지

     그리고 가려운 겨드랑과 충혈된 눈빛을 떠나

     바람은 자꾸만 어디로 가는 것일까)


    4.

    이 마을의 겨울이

    막 이화령을 넘어올 때까지

    검은 江의 上流로 걸슬러 온 바람은

    世上에서 적당히 失敗한 사람 몇을

    데려왔다 다시 몇 사람을 데려 갔지만

    洞口밖을 지나며 한 번쯤 힐끗 돌아보던

    바람의 회초리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머지않아 폐광이 되리라는

    所聞이 

    알게 모르게 안개 속을 빠져나오자

    광부들은 차츰 근심스러운 허수아비가 되어갔다.


    5.

    그리고 눈이 내린다.

    텅 빈 광산의 양철지붕 위로 눈이 내린다.

    폐광촌의 바람은

    반쯤 허물어진 광구를 기웃거리다 돌아가고

    굳은 표정의 늙은 허수아비들만

    모여 앉아 바람으로 빚은 술을 마신다.


    무언가 자꾸만 무너져 내리는 폐광촌

    칼칼한 기침소리 몇 점만이 서성이고 있었다.


    (시인. 문경군 마성면 하내리)


    그리고 1987년 같은 책 ‘주흘 12집’에 ‘겨울手話’를 초대시로 투고하였다.


    겨울 手話


    이원규

    1984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으로 데뷔

    시인

    1987년 통신문학 『詩非詩』發行

    문경군 마성면 하내1리 649번지 거주


    줄 것 다 내어준 겨울들녘

    우리들의 體溫은

    정년 몇 도의 絶望인가

    지금은

    表情이 지워진 나무들마저

    더 이상

    뿌리 毛細血管의 꿈을 엿볼 수 없는

    氷河의 계절

    地上은 온통 얼어서 빛나는 것들 뿐이다.


    뼈만 남아 허옇게 그리움이 되는

    겨울江邊 갈꽃들의 서러운 몸짓으로도,

    문득 까무라치는 먼 별들의 비명으로도

    끝내 이르지 못할 겨울 手話여


    슬픈 溫帶의 地平엔

    다시 暴雪注意報가 내리고

    不穩書籍 속으로 등장하는

    우울증의 사내들

    하나 둘 指紋을 지우며 떠난 後

    빠진 눈썹 몇 낱만

    風聞으로 떠다니고 있다.


    이른 겨울아침,

    폭설로 지워진 길들을 다시 새기며

    外出한 우리들의 代父,

    낡은 외투차림의 代父는

    血壓이 낮아

    자꾸만 저려오는 눈사람,

    심각한 표정의 눈사람으로 서성이는데

    깊이 깊이 발목이 빠지는 절망으로

    削髮하는 풀꽃이거나

    서릿발 속 디딜 곳 없어 허우적이는

    푸른잠 푸른꿈의 청보리들.


    그러면 무엇일까

    겨울外燈이 마련한 빛의 聖域을 향해

    한없이 投身하는 눈발을 보며

    “깨어나라 깨어나라

    방심하는 청보리여, 풀꽃심장이여“

    저마다 속속이 나부끼는 깃발로

    저리도 간절한 겨울手話는.


    줄 것 다 내어준 겨울들녘

    우리들의 체온은

    정녕 몇 도의 사랑인가.

    모든 그리움이 絞殺된 거리를 지나

    몇 번 덧칠한 風景 한 꺼풀을 열고 보면

    추락하던 새 한 마리

    다시 솟구쳐 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서울로 가 월간 《노동해방문학》과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일했으며 중앙일보와 월간중앙 기자를 하기도 했다.


    1984년 《월간문학》에 시 〈유배지의 풀꽃〉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고, 1989년 《실천문학》에 연작시 〈빨치산 아내의 편지〉 15편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에 나섰다. 1998년에 제16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으며, 2004년에 제2회 평화인권문학상을 받았다.


    2000년 지리산 실상사의 수경스님과 황지연에서 을숙도까지 1300리 길을 함께 걸은 첫 도보순례를 시작으로, 2002년에는 문규현 신부 등과 “무분별한 개발중심주의를 경계하라”는 목소리를 내며 전라북도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지원했다. 2004년에도 제주도를 포함해 대한민국 땅 소읍 여기저기를 두루 밟는 도보순례를 했으며, 2008년 봄에 종교인·일반 시민·동료 시인 박남준과 함께 ‘한반도 대운하 건설 반대’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과 금강 일대를 100일 이상 걸었다.


    2008년 현재 지리산의 빈집이나 절방을 옮겨 다니며 살고 있다. 자신이 머무는 토방을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무는 곳’이라는 뜻의 피아산방(彼我山房)이라 부른다. 누구나 찾아와 하룻밤 묵고 갈 수 있도록 열려 있다.


    시집

    《빨치산 편지》(청사, 1990)

    《지푸라기로 다가와 어느덧 섬이 된 그대에게》(실천문학사, 1993)

    《돌아보면 그가 있다》(창비, 1997)

    《옛 애인의 집》(솔출판사사, 2003) ISBN 89-8133-636-9

    《강물도 목이 마르다》(실천문학사, 2008) ISBN 978-89-392-2176-5


    산문집

    《벙어리달빛》(실천문학사, 1999)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좋은생각, 2004) ISBN 89-86429-64-0

    《지리산 편지》(대교북스캔, 2008)


    [그의 히트작]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 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지리산 둘레길


    이원규


    5월의 푸른 눈빛으로 그대에게 갑니다.

    함부로 가면 오히려 병이 더 깊어질 것만 같아

    생의 마지막 사랑마저 자꾸 더 얕아질 것만 같아

    빠르고 높고 넓고 편한 길을 버리고

    일부러 숲길 고갯길 강길 들길 옛길을 에둘러

    아주 천천히 걷고 또 걸어서 그대에게 갑니다.


    잠시라도 산정의 바벨탑 같은 욕망을 내려놓고

    백두대간 종주 지리산 종주의 헉헉

    앞사람 발뒤꿈치만 보이는 길 잠시 버리고

    어머니 시집 올 때 울며 넘던 시오리 고갯길

    장보러 간 아버지 술에 취해 휘청거리던 숲길

    애빨치 여빨치 찔레꽃 피는 돌무덤을 지나

    밤이면 마실 처녀총각들 물레방앗간 드나들고

    당산 팽나무 달 그늘에 목을 맨 사촌 누이가

    하루 종일 먼 산을 바라보던 옛길

    그 잊혀진 길들을 걷고 걸어 그대에게 갑니다.


    찔레순 꺾어 먹으며 층층나무 환한 용서의 꽃길

    내내 몸을 숨긴 채 따라오던 검은등뻐꾸기가

    홀딱벗-고, 홀딱벗-고! 욕망을 비웃는 반성의 숲길

    3도 5군 12면 100여 마을을 지나는

    성찰과 상생의 지리산 둘레길

    어머니의 ○, 용서의 ○, 사랑의 ○, 오옴의 ○

    비로소 발자국으로 850리 거대한 동그라미 하나 그리며

    날마다 보랏빛 붓꽃으로 신록의 편지를 쓰는

    5월의 푸른 눈빛으로 그대에게 갑니다.


    그리하여 돌아올 때는 그대와 더불어

    섬진강변을 걸어 이팝나무 꽃그늘 속으로 왔으면 좋겠습니다

    검은등뻐꾸기가 어허허-허 어허허-허! 놀리는 소리에

    괜스레 얼굴 붉히며 슬쩍 손이라도 잡으며

    상사폭포 수락폭포를 지나 그렇게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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