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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피왈자-2009.9.23-경북일보 고성환 칼럼
    카테고리 없음 2011. 6. 13. 19:59

    녹피왈자 (鹿皮曰字)
    기사입력 | 2009-09-23
    고성환(문경문화원 사무국장)

    정치는 말의 예술이다. 행정은 문서로 하지만, 정치는 말로 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말은 현란하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시원한 알맹이가 없다. 실천 가능한 말도 드물다. 그냥 우리들의 심리적 위안과 실망만 쥐락펴락한다.

    정치인의 말에 의해 우리 일반시민들은 박수치거나 환호는 할지언정 그들을 통해 무슨 득을 보려는 생각은 애시 당초 버려야한다.

    그걸 알고 정치인의 말을 들어야 한다.

    정치의 속성과 정치인들의 처지가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에 대해 기대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다.

    녹피왈자(鹿皮曰字)란 이런 정치의 속성을 가장 잘 말해주는 사자성어다.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맞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맞다. 녹피왈자(鹿皮曰字)는 그런 우리 속담과 같은 뜻이다. 사슴 가죽에 가로왈(曰)를 써놓고 상하로 당기면 날일(日)자가 되고, 좌우로 당기면 가로왈(曰)자가 되는 것이다.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도 같은 뜻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언론에 나오는 여야의 소리를 들어보면 다 맞는 말이다. 여당 말 들어보면 여당 말이 맞고, 야당 말 들어보면 야당 말이 맞다. 때로는 판단이 잘 서지 않을 때가 있다. 어느 쪽의 말을 믿던 그것은 결국 다 틀린 말일 테지만, 우리는때로 그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야만 한다. 그것도 정치의 속성이다.

    바야흐로 이명박 정부의 2기 내각이 들어서려고 하고 있다. 곧 다가올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청문회 논쟁이 뜨겁다. 그러나 여야 모두 원죄를 지고 있다.

    여당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은 청문회로 보면 결코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었다. 그동안 지금의 여당은 엄정한 청문회 잣대로 후보자들을 할퀴고 짓밟았다. 야당도 마찬가지였다. 두 차례의 대선과 총선에서 그들은 지금의 여당을 이 땅에 있어서는 안 될 파렴치한 집단으로 짓밟았다.

    지나놓고 보니 모두가 그들의 현란한 녹피왈자(鹿皮曰字)였다. 한쪽도 다 마찬가지였던 걸, 우리가 예전엔 미처 몰랐던 것이다.

    곧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중앙정치의 모습을 닮은 판이 우리 눈앞에 펼쳐질지도 모른다. 이번선거는 여덟 장의 투표를 해야 한다고 한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중앙정치의 한 패거리를 세우는 선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우리지역을 정말로 사랑하고, 시민들을 우러러보는 겸손한 우리의 심부름꾼을 뽑아야 한다.

    열정에 넘쳐 약간의 실수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실수 없는 사람은 사람도 아니다.

    인간미 넘치는 우리 이웃집 아저씨 같은 사람, 형 같은 사람, 동생 같은 사람을 골라보자. 현란한 녹피왈자(鹿皮曰字)의 정치적 논쟁은 한 귀로 흘리고, 꼼꼼하게 생각해야 우리지역의 행복은 펼쳐질 것이다.

    고성환(문경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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