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경의 팔경(八景)들카테고리 없음 2022. 4. 17. 13:07
[문경이야기] 문경의 팔경(八景)들
작가 고성환
1. 팔경(八景) 시(詩) 접하기
팔경(八景)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은 문경팔경(聞慶八景)이었다. 그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새재계곡, 봉암사백운대, 대야산 용추계곡, 선유동계곡, 쌍용계곡, 김용사계곡, 경천댐, 진남교반이 문경팔경이라는 것은 나중에 찾아서 알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알고 있던 팔경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문경향교 전교를 지낸 이동진(李東振) 선생이 자신의 할아버지 영파(潁坡) 이석영(이석영. 1875~1951) 선생과 아버지 동산(東山) 이봉원(李鳳源. 1900~1983) 선생의 유고(遺稿)를 한 데 모아 엮은 소술재연방집(紹述齋聯芳集)을 2020년에 접하고부터였다.
이 문집에서 두 분은 자신이 살던 가은읍 갈전리를 배경으로 영파 선생은 ‘갈전팔경(葛田八景)’과 ‘산수동팔경’을 지었고, 아들인 동산 선생은 ‘갈전팔경(葛田八景)’을 지었다.
그동안 문경의 구곡(九曲)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져 왔다가 이 책에서 팔경을 발견하고, 그 이전에 지나쳐 왔던 팔경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바심이 났다. 빨리 지나쳐 왔던 팔경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 중에 관산구곡(冠山九曲)을 발굴하며 보았던 손와(巽窩) 이경중(李慶中. 1918~2001) 선생의 ‘고요팔경(古堯八景)’, ‘영주팔경(瀛洲八景)’, ‘홍도팔경(紅島八景)’을 찾았다. 그리고 남강구곡(南岡九曲)을 발굴하며 보았던 이원영(李源榮. 1915~2000) 선생의 ‘차송석정팔경운(次松石亭八景韻)’, ‘팔경운(八景韻)’, ‘양계십경(陽溪十景)’도 찾았다.
그리고 이보다 앞서 지나쳤던 임병기 시인이 펴낸 5대 문집 ‘선세유고(先世遺稿)’에서 일산(一山) 임열호(林㤠鎬) 선생의 ‘신거팔경(新居八景)’, 즉 문경읍 평천팔경과 ‘일산시사팔경(一山詩社八景)’, 즉 영순면 금림팔경을 찾았다.
여기에 2019년 11월 1일부터 5일까지 문경문화원 전시실에서 열렸던 (사)국학연구회(이사장 신후식)의 ‘국학연구 고문서전 5, 문경팔경과 선유구곡 그리고 구로계’라는 도록을 찾아 마침내 문경의 팔경시문학의 대강을 얽게 되었다.
지나쳤던 이 전시회 도록에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문경팔경(聞慶八景)’, 허백정(虛白亭) 홍귀달(洪貴達. 1438~1504)의 ‘문경팔경(聞慶八景)’ 시(詩) 전문(全文)이 실려 있었다.
또 신후식 선생이 편저한 문경사 집주(聞慶史 集註)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의 문경팔영(聞慶八詠)이 있다는 내용을 읽고 책을 뒤져 찾기도 했다. 사가 선생의 문경팔영은 지금까지 발굴된 문경 팔경 시 중 가장 오래된 시였다.
문경팔영(聞慶八詠) / 서거정(徐居正)
주흘영사(主屹靈祠)
험한 산은 하늘 끝에 닿았고
깎아지른 벼랑은 구름 속에 들어있다.
만물을 윤택하게 함에는 비록 그 자취 없으나
구름을 일으킴에는 스스로 공이 있다.
관갑잔도(串岬棧道)
구불기는 양의 창자 같은 길이
구불구불 새 나는 것 같이 기이 하도다.
봉우리 하나되어 모두 빼어났으니
그런 데로 말 가기가 더디구나.
창외오동(窓外梧桐)
솔솔 부는 바람이 잎사귀를 흔드는데
이지러진 달이 성긴 가지에 걸렸구나.
갑자기 내리는 한밤중 비에
고향 생각을 어이하리
정전양류(庭前楊柳)
영남의 그 많은 나그네들
꺾어 주어 이제는 남은 것이 없으련만
의연한 봄바람에 떨치니
긴 가지는 짐짓 여전하구나.
창벽풍단(蒼壁楓丹)
붉은 잎이 푸른 절벽을 장식하니
강산이 아주 딴판이로구나.
내가 온 때가 마침 늦가을
이렇듯 좋은 경치 일찍이 본적이 없네.
음애백설(陰崖白雪)
겨울이 깊어 얼음이 골짜기에 가득해도
봄이 오면 물이 시내를 이룬다.
자연의 모습은 때를 따라 달라지는데
인정은 늙어가며 어지러워지련다.
오정종루(烏井鐘樓)
나그네길 시름으로 잠 못 이루는데
외로운 베갯머리엔 달빛만 비쳐온다.
어디가 한산사이냐
드문드문 울리는 종소리 한밤중에 들려온다.
용담폭포(龍潭瀑布)
옥같은 무지개 높다랗게 드리웠는데
흰 눈은 산뜻한 맑음을 뿌려준다.
날고 자맥질하는 술법을 묻지 말고
변화의 신통을 알아야 하리.
서거정의 문경팔영을 기본으로 윤상(尹祥)의 별동집(別洞集) 1권, 김종직의 점필재집(佔畢齋集) 16권, 홍귀달의 허백정집(虛白亭集) 속집 3권에 각각 문경팔영이 있다.
모두 사가의 시에 차운(次韻)하여 운자(韻字)는 같다. 하지만 8경의 제목 가운데 사가의 주흘영사, 정전양류를 별동은 주흘산영, 정중양류로 점필재와 허백정은 주흘신사, 문전양류라고 했다. 또 사가와 별동은 창외오동, 창벽단풍, 음애벽설, 오정종루라 하고, 점필재와 허백정은 헌외오동, 만학단풍, 천애적설, 오정상종이라 해 서로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신후식 선생이 제시한 문경 문인들의 팔경 한시는 태촌(泰村) 고상안(高尙顏. 1553~1623)의 남석정8경, 양졸당8경, 규정(葵亭) 신후재(申厚載. 1636~1699)의 연경8경, 여봉(廬峰) 신필성(申弼成. 1646~1716)의 사마소8경, 묵암(黙菴) 김진호(金振鎬. 1852~1912)의 묵암8경, 담옹(澹翁) 정규창(丁奎昌. 1872~1949)의 연하동(煙霞洞)8음, 아호(鵝湖) 정식(丁湜. 1915~2008)의 아호8경이 있다.
이와 같은 문경의 팔경이나 문경사람들이 지은 팔경 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성명 생몰 팔경 지역 비고 서거정 1420~1488 聞慶八詠 문경현 일원 윤상 1373~1455 〃 김종직 1431~1492 〃 홍귀달 1438~1504 〃 고상안 1553~1623 남석정8경 점촌 예골 양졸당8경 ? 신후재 1636~1699 연경8경 중국 신필성 1646~1716 사마소8경 우지 앞 영강 김진호 1852~1912 묵암8경 서중리 정규창 1872~1949 연하동8음 ? 이석영 1875~1951 갈전8경 가은 갈전 산수동8경 가은 산수골 임열호 1885~1972 시사8경 영순 금림 신거8경 문경 평천 이봉원 1900~1983 갈전8경 가은 갈전 2. 팔경(八景) 시(詩) 빠져들기
그래서 올해 들어 팔경 시를 찾기 위해 문헌을 찾기 시작했다. 그동안 팔경 시를 제법 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 도대체 왜 우리 선조들이 팔경을 시로 읊었을까 궁금했다. 그런 의문을 풀어준 책이 안장리 교수의 ‘한국의 팔경문학’, ‘조선왕실의 팔경문학’이었다.
옛 선비들은 자연 속에 도(道)가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도가 깃든 곳을 '승경'이라 했고 승경은 하늘이 짓고 땅이 숨겼다고 했다. 그러한 곳에 팔경과 구곡으로 이름 짓고 마음을 닦으면서 도의 이치를 깨닫고자 했다. 구곡은 퇴계의 '도산구곡'과 율곡의 '고산구곡'에서 시작되었고, 팔경은 '관동팔경'과 '단양팔경'이 명승지로 이름을 얻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오늘날 전 국토를 팔경화해 자기 고장을 자랑하고 있다.
옛사람들은 살고 있는 곳을 중심으로 수려하고 특징 있는 경관들을 여덟 가지 경치로 구분하여 산수시(山水詩)란 형태로 즐겨 표현했다. 그리고 이를 팔경시(八景詩)라 이름 붙였다. 주로 특정한 읍성를 중심에 두고 특징적인 장소나 의미 있는 곳 등을 택하여 노래한 이 팔경 시는 고려 때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약 4천여수가 전해지고 있다.
조선건국의 주역 정도전(鄭道傳)의 신도팔경(新都八景)도 그중의 하나다. 지금의 서울지역 중 빼어난 풍광과 문물을 노래한 것으로 정도전은 이 신도팔경을 당시 좌의정인 조준과 우의정 김사형에게도 각각 한 폭씩을 주기도 했다.
팔경(八景)은 수려하고 특징 있는 경관을 명료하게 나타내는 전통적인 표현방식인 만큼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단양팔경과 같이 경승 여덟 곳으로써 그 일대의 광활한 경관 모두 정리해 보인 대표적인 팔경이 있는가 하면, 무수히 많은 정자에서 그 주변의 풍광을 여덟 수의 사언절귀 또는 차운시로 읊는 방식의 일명 정자팔경도 있다. 강원도 관동팔경이 대표적이다.
또 특정한 읍성를 두고 특징적인 장소나 대상 그리고 의미 있는 곳 등 여덟 곳을 택하여 노래한 팔경도 있다. 수원팔경은 화성 축성과 연계되어 지어진 대표적인 읍성팔경이다. 정조가 화성을 세우고 빼어난 경치 여덟 군데를 꼽아 찬양했기 때문이다. 광교적설(光橋積雪), 북지상련(北池賞蓮), 화홍관창(華虹觀漲), 용지대월(龍池待月), 남제장류(南提長柳), 팔달청람(八達晴嵐), 서호낙조(西湖落照), 화산두견(華山杜鵑)등이다.
정자팔경이 사적인 의미가 있다면 수원팔경 같은 읍성팔경은 공적인 의미가 매우 크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한양을 포함 전국에 23개소의 읍성을 중심으로 25개의 읍성팔경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동해안 일대의 강릉을 비롯해 용추계곡-선유계곡-화양계곡을 사이에 두고 영남과 중원의 길목에 놓인 문경, 남한강변의 여주와 금사 등이 여기에 속한다.
팔경은 이상향의 풍경과 우주 원리를 함축하고, 중국 소수와 상강 8개 경승서 유래했다. 시·그림·가사문학·판소리에도 등장하는데, 소설 구운몽 속 배경이 소상팔경이다. 선비문화, 규방을 통해 대중문화로 나왔다.
이에 비해 구곡은 탐욕을 버리고 도(道)를 찾는 아홉 물굽이로, 중국 '주희 강론지' 무이구곡에서 유래했다. 선비사회에서 '일생의 탐승 대상'으로 삼았으며, 퇴계의 낙동강 상류 '도산구곡'을 비롯해 영남 선비들이 특히 많이 경영했다.
겸재 정선의 '소상팔경도'는 이후 많은 팔경 관련 시, 그림 등에 영향을 미쳤다.
3. 팔경(八景) 시(詩) 찾고 탐방하기
지금까지 찾은 문경 사람이 읊거나나 문경 관련 팔경 시는 앞에서 살펴 본 것 외에 다음과 같은 것들을 찾았다.
성명 생몰 팔경 지역 비고 권섭 1671~1759 聞慶十景, 花枝十評 이원영 1915~2000 次松石亭八景韻, 八景韻, 次陽溪十景 이경중 1918~2001 古堯八景, 附和八景, 瀛洲十景, 紅島十景 미상 內化八景 그림 남유해 1866~1936 次思孝齋九景韻, 次蔡士範黙鎭嶧陽草廬八詠韻, 次李可衡攝宰睡銀堂十二景韻, 謹次盤巖十景韻, 草心亭四韻, 東山洞四韻 남상익 1891~1962 陽坡亭八景 고인계 1564~1647 江邨八景 김해 1633~1716 道村八景, 次白石亭十景韻, 院村十二景, 避炎亭八咏韻 안재극 1879~1940 次竺洞八景韻, 次蔡士範嶧陽八景韻 4. 팔경문학(八景文學)의 현대화
그런데 그 많던 선조들의 팔경문학이 현대에 와서는 잊히고 말았다. 과문한지 몰라도 현재 글을 쓰고 있는 문인들의 팔경 시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팔경문학을 현대화 해 보는 게 어떨까 생각하고, 월방산 봉천사에 주석하며 그 주변의 가치를 발견한 지정스님을 따라 그곳을 완상(玩賞)하고 봉천사팔경을 지어보았다.
봉천사팔경 / 고성환
일출
문경의 이마로 동해 일출 먼저 받아
사바를 밝혀 주는 세존의 옥석이여
산새들 홰를 털면서 아침 종 울리는 곳
너럭바위
억만년 숨 고르다 껍질 깨는 두꺼비여
느릿느릿 기어올라 배를 깔고 엎드리어
너럭 등 내어주고서 시간을 잡고 있네
개미취
온몸을 키워가며 사계절 활인공덕
회심곡 구구절절 하늘가에 부르는 이
우리는 어느 때 쯤에 구난공덕 해볼 건가
소나무
스님의 사랑으로 점점 푸른 저 소나무
세상 법에 걸리신 그 고통 아시련가
우우우 바람 몰고 와 가슴을 쓸고 있네
병암정
병암정 읽던 경전 바위에 새겼더니
세세연연 읽어 오던 흙들이 살이 쪄서
그 위에 등신불 세워 마음들 읽게 하네
산신각
천년 넘게 지켜온 바람 구름 모셔놓고
햇살을 불러다가 돌담장에 끼워 넣고
소원들 알알이 새겨 풀어주는 저 미소
망야경(望夜景)
봉천사 독경소리 발아래 내려앉아
점촌고을 골목마다 오순도순 정이 뜨고
밤마다 축제를 여는 화려한 불꽃놀이
지정스님
무슨 눈을 가졌기에 땅속도 다 보시고
묻힌 돌들 깨우셔서 부처로 앉히시며
다 죽은 풀과 나무를 생불로 만드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