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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촌역의 독백-시 조향순, 낭독 고성환카테고리 없음 2024. 10. 8. 23:53점촌역의 독백, 조향순 시, 고성환 낭독.m4a4.02MB
점촌역의 독백
조향순
1924년에 태어난 나는 이제 백 살, 백년은
진남교 산벚꽃이
백 번이나 피고 진 세월이고,
천마산 위로 떠올랐다가 돈달산 속으로 해가 빠지기를
삼만육천오백 번이나 한 세월이고,
마을 어귀 새끼 느티나무가
구멍 뚫린 고목이 된 세월이네
잊지 못하겠네
그 옛날 석탄을 가득 싣고 신바람 나게 달리던
증기기관차의 뜨거운 콧김을,
토요일 오후에 썰물처럼 갔다가
일요일 오후에 밀물처럼 돌아오던 사람들,
그 많은 사람의 젊은 웅성거림을
잊지 못하겠네
나도 덩달아 뜨겁고 젊었던 시절이었네
오늘, 철로변 풀들이 말라가는 늦가을
나는 지금 좀 적막하네
무궁화호가 하루에 몇 번씩 영주와 김천 사이를
드문드문 왔다갔다, 내가 살아있나
숨소리를 확인하고 있네
이러다 정말로 영원히 잠들까봐 겁나네
잊혀질까 무섭네
화려했던 과거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를
줄곧 잊지 않았으면 좋겠네
잔치에 나를 꼭 불러주었으면 좋겠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역 광장이 들썩들썩
사람이 흘러넘치던 옛날,
부활의 꿈을 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