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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점촌고등학교를 지나며
    나의 이야기 2007. 12. 2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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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촌고등학교 앞을 지나며



    수필가 고성환


    세월이 화살과 같이 빠르단 말은 아이들이 커오는 걸 보면 더욱 실감난다. 그것이 벌써 3년 전이다. 큰 녀석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고 산골에서 다운타운으로 나왔던 것이. 그 때 나는 불의에 의해 20년 정든 직장을 떠나 황야에 내몰려 있던 몸과 마음이 아주 추웠던 때였다. 내 앞가림이 바빠 솔직히 아들 녀석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깡마른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30년 전의 내 환영(幻影)이 고등학교 앞에 서 있었다. 다른 것이라면 나는 그 때 그나마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던 직후라는 사실이다.


    황량하나마 아들보다 미리 이 다운타운에 나와 있었던 나는, 덕분에 돈으로 할 수 없는 많은 부분들을 아들에게 해 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래서 나와 아들 녀석의 점촌고등학교 3년은 많은 추억이 잉태된 때였다. 몸과 마음이 많이 춥던 때에 아들과 내가 가까이에서 서로 비비고 서 있음으로 서로가 따뜻해 졌던 기억들.


    - 야자 학습을 마치고 기숙사에 들어가는 시간을 이용해 시내에 데리고 나와 토스트를 꾸역꾸역 사먹이던 일, 수학 기초가 부족하다고 2달 동안 밤 10시부터 12시까지 별도 공부방을 데리고 다니던 일, 시험치고 피곤하다 해서 내 사업장 방에 데리고 와 잠재우던 일, 시는 시간을 이용해 친구들과 시내 나와 돈 떨어졌다고 전화하면 달려 나갔던 일, 혹시나 배나 곯지 않을까 학교로 찾아가 나오지 않으려는 녀석을 데리고 나와 물회 사먹이던 일-


    이젠 모두가 추억이 되었다. 아주 따뜻한 추억이 되었다. 한겨울에도 결코 시리지 않은 추억이 되었다.


    16살 어린 아들 녀석이 그동안 한 번도 떠나지 않은 할머니 곁, 어머니 곁, 동생들 곁을 떠나 기숙사에 입소하던 날은 참으로 서럽기까지 했다. 지금 그 생각을 해도 눈앞이 가린다. 180명 중에 151등이라는 배치고사 성적을 받아들고 명문 고등학교로 발돋움하던 이 학교에서 과연 순득이 촌놈이 잘 해 낼까 하는 것은 나에게 늘 가슴 아린 걱정을 안겨주었다. 인생이 공부가 다는 아닌데 하면서도, 이왕이면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갔으면 하는 바람은 점점 욕심이 되어 갔다. 그러나 끝내 이런 내 속내를 표시해 보진 못했다. 혹시나 순득이 촌놈에게 부담이나 되지 않을까 조바심을 낸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순득이 촌놈은 흰 종이 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법이었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흰 종이 위에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러자 쑥쑥 성적이 올라갔다. 그동안 발휘하지 못했던 잠재력을 서서히 펼치기 시작했다. 1학년, 2학년, 3학년. 녀석은 나날이 잠재력을 발휘하여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수준별 자율학습 교실이 나날이 바뀌어 가고 있었다. 교실-3학습실-대학습실-소학습실 등 네 계단의 수준을 오르고 내리더니 3학년 2학기 때는 마침내 소학습실에 안착했다. 길고 긴 여정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주 우연히 지리올림피아드에 출전하더니 전국대회 동상 수상이라는 눈부신 성적까지 내기 시작했다. 덕분에 서울대학교 특기자 전형이라는 것에 원서를 내는 가문의 영광도 안겨 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말했다. 말로만 듣던 서울대학교에 원서를 낸다는 자체로 가문의 영광이라고....그 영광은 계속되었다. 마침내 수능에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1112의 등급을 받았다. 문과 3등이라는 성적이었다. 기라성 같은 친구들 틈에서 어느새 순득이 촌놈은 탑클래스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내게도 하루가 다르게 지난 아픔들이 지워지고 있었다. 그것이 아들 덕분인지, 아들이 내 덕분인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덕을 보며 3년을 보냈는 것이다.


    이제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내놓고 기다리는 순득이 촌놈이 영어공부를 해 보겠다기에 제 고모를 딸려 서울을 보냈다. 제 4촌 형도 마침 영어공부를 시작한다기에 보낸 것이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아들 녀석이 제일 좋아하던 4촌 형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두 녀석이 참으로 오랜만에, 참으로 다른 환경을 거쳐 새롭게 만나는 셈이다. 제 형은 군대까지 다녀왔고, 저는 어느새 대학생이 되고 있는 때이다.


    오늘 저녁 겨울바람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 일을 마치고 점촌고등학교 앞을 지났다. 불현듯 불야성을 이룬 점촌고등학교에 순득이 촌놈이 보이는 듯 아련했다. 갑자기 아들 녀석이 보고 싶었다. 산다는 게 이렇게 그립고 아린 것이란 걸 순득이 촌놈이 깨닫게 해 주는 추운 겨울 저녁이다.


    2007. 12. 29. 토. 20:30

    출처 : 문학세상
    글쓴이 : 국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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