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Timing)
수필가 고성환
지난 11월 15일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마친 아들 녀석이 정말로 오랜만에 여유작작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늘보 아들이 되었다. 학교에도 9시까지 등교하고, 한나절이면 하교한다. 기숙사 생활하면서 주말만 손꼽아 기다리던 녀석이었다. 가족들과의 별리의 아픔이 제법이었을 1학년 때부터 녀석은 대입이라는 것에 올인 하는 생활을 해 왔다. 학교 프로그램에 한 치도 어긋남 없는 생활이었다. 숫기 없는 녀석이 얼마나 군기가 들었는지 그 흔한 휴대폰도 없이 지냈다. 그 시간이 벌써 3년이라니...
이제 녀석은 매일 집에서 통학을 하면서도 시간에 구애됨이 없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쉬는 것이 아니라 충전하는 것이라고, 때가 되면 움직일 거라고, 자기 충만으로 말하는 녀석이 밉지만은 않다. 때가 되기를 기다린다는 데 달리 해 줄 말도 없다.
집에는 팔순이 넘은 어머님과 우리 내외, 3남매의 아이들이 지낸다. 여섯 식구다. 요즈음 세태로 보면 대가족이다. 각자 하는 일이 얼마나 바쁜지 모른다. 팔순이 넘은 어머님은 자기 몸 추단도 버거운 연세에 텃밭을 가꾸는 일에 늘 바쁘시다. 아내는 세상에 누구보다도 바쁘다. 직장 일에, 하루하루 커오는 아이들 장래를 위해 한시도 가만히 있을 틈이 없다. 딸아이 둘도 중학교 3학년, 1학년인데 공부한다고 도무지 틈이 없다. 늘보 아들은 이제 잠시 쉬고 있으니 틈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집안은 늘 수시밤탱이다. 내가 늦은 귀가 시간에 청소기 한 번 돌리지 않는다면 그나마도 우리 집은 엉망일 것이다.
엉망인 우리 집의 가장 큰 문제는 버리기와 갈무리하기의 줄다리기에 있다. 비닐봉지 하나라도 구석구석 모아 두어야하는 어머님과 이를 버리려는 우리들과의 줄다리기는 집안 분위기를 늘 어색하게 하는 문제였다. 어머님이 나와 아내를 대신하여 우리 아이들 3남매를 키워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모두 한 편이 되어 어머님을 무시하며, 버릴 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동안 어머님은 우리 집의 기둥이셨고,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우리 집의 살림꾼이셨다. 그 공로를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에 어머님의 못마땅한 갈무리도 무시할 수 없어 신식 집은 늘 엉망인 것이다.
어젯밤에는 아내가 고쳐 쓸려고 갈무리 해 두었던 망가진 밥상을 내다버리려 했다. 며칠 전 이 상다리를 버렸더니 어머님이 다시 주워 오시면서 궁시렁궁시렁 하던 말을 들었던 나는 깜짝 싶었다. 이 밥상으로 말미암아 벌어질 어머님과 아내의 논쟁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여보. 이것 좀 내다버려요.” 아내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엉거주춤 어머님을 살펴보던 내가 “왜? 내일 버리지 뭐.”하면서 어머님이 들을까 조바심을 내는데, 늘보 아들 녀석이“아이고. 엄마는 타이밍 좀 맞춰 봐. 타이밍?” 그 순간 나와 아내는 아들의 절묘한 참견에 무슨 큰 발견이라도 한 듯이 하던 일들을 다 멈추고, 아무 말 없이 사태를 수습하였다. 어머님과 논쟁을 버릴 시간도 없이 슬기롭게 일이 수습된 것이었다.
타이밍. 때. 아들 녀석이 수능만 잘 본 게 아니라, 인생의 많은 부분을 이미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기뻤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다. 때가 있다. 이를 잘 알지 못하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소득이 신통찮음을 우리는 잘 안다. 다툼도 바로 이 타이밍을 잘못 맞추는데서 생겨난다.
말해야 할 때, 침묵해야 할 때, 앉아야 할 때, 서야 할 때, 들어가야 할 때, 나가야 할 때, 올라가야 할 때, 내려와야 할 때, 가야 할 때, 멈춰야 할 때, 일해야 할 때, 쉬어야 할 때..... 무수히 많은 타이밍이 우리들 앞에 늘 놓여 있다.
지금 나는 어떤 타이밍 앞에 놓여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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